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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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차갑고 따듯한기타 2016. 1. 17. 09:59
[육룡이 나르샤] 차갑고 따듯한 데굴데굴 구르던 태미가 아랫목에서 우뚝 멈춘다. 그러고는 한참을 있기에, 가만히 정좌로 앉아있던 선미는 처음으로 눈썹을 꿈틀하고 움직였다. 왜 그러냐는 듯한 모습에 태미가 한탄하듯 말한다. “춥고 따듯한 곳에 굴러다니고 싶어.” 춥고 따듯한 곳? 선미가 표정을 구겼다. 어이가 없어서 입이 다 벌어질 지경이다. “그런 곳은 없어.” 선미는 단호하게 말하곤 다시 서책으로 시선을 두었다. 무언가 했더니 또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다. 한심함에 태미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선미는 서책에 집중했다. 아버지가 간신히 얻어온 서책이었다. 태미는 보지 않는다하여 선미 홀로 열심히 읽고 읽어 다 바래어버린 서책. 제 꿈을 그리도 냉정하게 잘라버리고선 저 홀로 책이나 보고 있는 선미가 얄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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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홍 인방 (洪 仁訪)기타 2016. 1. 17. 09:44
[육룡이 나르샤] 홍 인방 (洪 仁訪) 사람이 바뀌는 것이 무에 대수라고 태미는 생각했다. 한낱 쇳덩이도 망치로 내려치면 그 모양이 변하거늘 사람이라고 변치 않으리란 법도 없다. 해서 태미는 홍인방의 변화가 그리 새삼스럽지 않았다. 다만 그 변화가 제 마음에 쏙 드는 방향으로 틀어졌을 뿐인 것이지. 해서 손을 잡았고, 사돈지기가 되었으며,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술자리도 함께하고 있다. “사돈.” 하지만 근래 들어 저 사돈이 어떠한 표정을 지어보일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 짝이었다. 나지막이 부르는 인방의 음성에 태미가 입가에 술잔을 대려다 멈춘다. 아쉬운 마음에 태미의 시선이 잠시 술잔 속 찰랑이는 액체에 닿았다. 옆에서 가만히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온다. 태미는 미소 띠며 제 사돈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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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눈기타 2016. 1. 16. 23:07
[육룡이 나르샤] 눈 어릴 적 겨울이 오면 선미는 아우와 함께 항상 들떴었다. 춥고 배고픈 것은 일상이었으니 그것들은 제쳐두고, 다만 기다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하얀 눈. 새까맣던 온 세상을 아주 하얗게 뒤덮어줄, 차갑고 시리고 따듯한. 선미는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하얀 눈송이를 보며 슬며시 웃었다. 그리곤 허공에 대고 말을 걸어보았다. 기억하는가, 아우님. 차갑게 언 흙바닥에 하나둘 스미던 작은 눈망울이 곧이어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 위로 어린 아우의 모습이 드리운다. 새하얀 꽃이 하늘에서 내려오면, 아우는 정말 환히도 웃었다. 저와 같은 얼굴로 그리 웃을 수 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하였다. 항상 상접하였던 피골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밝은 미소. 그 미소를 따라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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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길 형제 (吉 兄弟)기타 2016. 1. 15. 00:37
[육룡이 나르샤] 길 형제 (吉 兄弟) 어릴 적엔 제법 비슷하였다. 똑 닮은 이목구비에 똑 닮은 웃음까지 완벽하여 정말 꼭 닮은 쌍생이라며 보는 이의 놀람을 한 몸에 사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말을 떼기 시작했을 때부터?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님,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라면……. 이 길태미가 ‘꽃’을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를 악물어본다. 손에 쥐인 검집이 시리기만하다. 마주한 쌍생의 얼굴이 저와 다를 바가 없어 화가 난다. 이리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이며 언제부터였나. 발치에 떨어진 검을 향해 태미는 손을 뻗었다. 카가각, 벼려진 칼날이 바닥을 긁으며 태미의 손에 쥐인다. “겨우.” 그래. 너와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가 바로. “겨우, 10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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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이인겸기타 2016. 1. 9. 23:01
[육룡이 나르샤] 이 인겸 젊을 적에는 영원할 것만 같던 삶이 이제는 끝이 보이는구나. 인겸은 살짝 눈을 감기만 해도 떠오르는 옛 기억에서 매번 헤어 나오기 위해 애를 써야했고, 몸을 가눌 힘이 없어 하루 대부분을 누워 지냈다. 숨 쉬기 버거운 날도 있었고, 어느 날엔가는 꼬박 하루를 기절하듯 잠들어 있던 적도 있었다. 나도 이젠 나이를 먹은 게지. 혼잣말로 허공에 대고 말을 걸어본다. 인겸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가, 이제 제 곁에 남은 것은 없건만. 사내로서 이룰 것은 모두 이루었다. 깜빡 무거워진 눈꺼풀을 감았다가 인겸은 스치는 얼굴에 다시 눈을 떴다. 어르신, 이렇게 누워만 계시면 어떡해요. 어언 수십 년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지켜봐온 아이가 있다. 아마 저가 가장 오랫동안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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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길 태미 (吉 太味)기타 2015. 12. 2. 23:53
[육룡이 나르샤] 길 태미 (吉 太味) 최종수정일 [2016.01.17 20:04] 앳된 소년이 하나 둘 구령을 뱉는다. 가쁜 숨이 소년의 음성과 함께 흘러나왔다. 소년은 양손이 다 트도록 강하게 쥔 목검을 같은 자세로 몇 번이고 휘둘렀다. 얼마나 흘렀을까? 소년의 눈이 비 오듯 쏟아지는 땀에 감긴다. 멈춰선 소년의 시야에 문득 예쁜 꽃 하나가 들어왔다. 어? 동글동글한 모양새로 노랗게 제 색을 발하고 있는 귀여운 꽃. 소년, 태미의 시선이 그곳에서 떨어지지 못한 채 한참을 머물렀다. 예쁘다. 가만히 그 꽃을 바라보던 소년이 조심조심 걸음을 떼어 꽃 앞에 멈추어 선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못하고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까이서 본 노란 꽃은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예뻤다. 태미의 입가에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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