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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길 형제 (吉 兄弟)기타 2016. 1. 15. 00:37
[육룡이 나르샤] 길 형제 (吉 兄弟)
어릴 적엔 제법 비슷하였다. 똑 닮은 이목구비에 똑 닮은 웃음까지 완벽하여 정말 꼭 닮은 쌍생이라며 보는 이의 놀람을 한 몸에 사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말을 떼기 시작했을 때부터?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님,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라면…….
이 길태미가 ‘꽃’을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를 악물어본다. 손에 쥐인 검집이 시리기만하다. 마주한 쌍생의 얼굴이 저와 다를 바가 없어 화가 난다. 이리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이며 언제부터였나. 발치에 떨어진 검을 향해 태미는 손을 뻗었다. 카가각, 벼려진 칼날이 바닥을 긁으며 태미의 손에 쥐인다.
“겨우.”
그래. 너와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가 바로.
“겨우, 10년이야.”
10년 전이었다. 딱, 정확히 10년 전 이맘때의 겨울이었지. 태미가 슬쩍 웃는다. 마주한 선미의 눈동자에 담긴 표정은 억울함일까, 아니면 분함일까, 그것도 아니면 서러움일까.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지껏 손바닥이 얼얼하다. 제 손에 칼이 쥐인 것인지 그저 짝대기가 쥐인 것인지 무감각할 정도로 정말이지, 엄청난 일격이었다.
“길선미.”
형님. 인정하긴 싫지만 당신은.
“겨우 10년밖에 안 지났다고.”
그래, 떨어져 지낸 지 고작 10년임에도, 이 길태미보다 배는 강해져버렸다. 악물었던 잇새로 허탈한 웃음과 함께 굳었던 태미의 표정이 풀린다.
“이젠 아주, 세 합도 받아주질 않는구나?”
쓴 웃음과 함께 선미를 향하는 태미의 눈동자가 못마땅한 낌새를 품고 있다. 선미는 설핏 웃었다. 태미의 눈초리가 더 가늘어진다. 선미의 손에 회수된 검은 처음부터 끝까지 검집 째였다.
“왜, 아우님. 또 덤비시려고?”
대놓고 웃은 것은 아니지만 작게 미소 띤 입가하며 답지 않게 흥미어린 눈동자가 마치 저를 향한 비웃음을 내비치는 것 같아 태미는 울컥해 소리쳤다.
“아휴, 시끄러!”
그리고선 ‘난 지는 싸움은 안 해’라고 뱉으려다 무언가 정말 지는 것 같은 기분인지라 굳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억울함 가득 깃든 태미의 표정을 선미가 놓칠 리 없다. 얄밉게도 선미의 입가에서 결국 웃음이 새어나왔다.
“야, 이 후레자식아! 집을 나갔으면 돌아오질 말아야지, 왜 오고 난리야?”
기분 상한 태미야 얼굴이 새빨갛게 되도록 삿대질하며 소리친다. 선미는 가만히 웃다가 입을 떼었다.
한숨을 한 번, 그리고 호흡을 한 번 삼키고 선미는 말했다.
“내가 간 것이 아니라, 아우님이 온 거지.”
선미의 말이 끝나지 무섭게 하늘에서 하나둘 눈송이가 떨어진다. 선미의 머리칼 위에 쌓일 정도로 몽글몽글 잘 모인 귀여운 눈송이들이었다. 태미의 눈이, 그리고 선미의 눈이 잠시 그 눈꽃을 향한다.
떨어져 내리던 눈꽃하나가 선미의 어깨에 앉고, 또 하나는 태미의 머리맡을 가로지른다.
“이제 알겠는가.”
벙 찐 태미를 보며 선미가 쓰게 웃었다.
“아우님. 아우님은 더 이상…….”
이승의 혼이 아니네. 말을 잇던 선미의 음성이 하얀 세상에 묻힌다. 선명하던 아우님의 얼굴이 눈덩이가 온기에 스러지듯 녹아 없어진다. 선미의 입술이 닫히고 태미의 형상은 더 이상 선미의 시야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듯.
선미가 바라본 그 곳엔 하얗게 쌓인 눈꽃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