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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손기타 2016. 1. 31. 23:17
[육룡이 나르샤] 손 선미는 머뭇거리다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은 아우의 손은 차기만 하다.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맞잡아본 그 손은 까슬거리고, 이곳저곳 부르터 성한 곳이 없었다. 쓰게 웃으며 선미는 그제야 아우의 손등을 손끝으로 매만져본다. 이렇게 제대로 손을 맞잡아본 것이 대체 몇 년 만이던가. 10년? 아니, 20년도 넘었을까? 옛날, 수십 년도 더 전 꼭 맞잡아왔던 아우의 작은 손이 선미는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놓지 않겠다는 듯이 그땐 그리도 꼭 맞잡아주었는데…. 문득 그땐 그리도 작았던 손이 이렇게나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아우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언제였지. 의도했던 것은 아니나 어느 순간 멀어졌다. 손? 손은커녕 얼굴조차 마주치기 힘들 지경이었지. 제 탓이 반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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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냐르샤] 새벽녘기타 2016. 1. 23. 01:12
[육룡이 냐르샤] 새벽녘 짹짹 우는 새 소리에 선미가 눈을 뜬다. 아침 댓바람부터 한숨을 쉬는 것은 그리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도 밤을 새어버리고 말았다. 푸욱 한숨을 내쉬며 지끈거리는 머리 위로 팔을 얹는다. 팔뚝의 무게가 이마를 누르며 그나마의 두통을 줄여준다. 무거운 눈꺼풀을 감으니 까만 밤이 펼쳐지고, 그 속에 언제나와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하얀 눈이 내리고, 비틀거리는 네가 있고, 붉은 핏물이 흐르고, 서슬 퍼런 칼날이 허공을 가른다. 선미가 팔뚝에 힘주어 눈두덩을 짓눌렀다. 다시 한숨을 쉬며 턱 막혔던 속을 풀어본다. 별반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야 나았다. 잠을 자긴 글렀군. 눈 붙이는 것을 포기하고 선미가 몸을 일으켰다. 낮게 피곤할 것이 선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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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귀신기타 2016. 1. 20. 20:43
[육룡이 나르샤] 귀신 어릴때 태미에게 특이한 병이 있었다. 그것이 어떤 병이냐하면, 해가 저물고 달이 뜨면 '태미'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태미의 탈을 쓰고서 눈을 뜨는 것. 일명 몽유병과 같은 증세이긴 하나, 그 무언가의 성깔이 워낙 사나워 함께 지내는 선미가 항상 고생을 했다. 말도 제대로 들어먹지 않고 사납고 괴팍한 성격 탓에 선미는 그것이 분명 아주 고약한 귀일 것이라 여겼다. 아비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무당에게도 데려가 보고, 부적도 써 보았더랬다. 허나 효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힘으로 태미를 제어하는 것뿐. 어느날은 그 몽유병 때문에 선미와 태미의 귀가 크게 싸워 선미가 크게 다치는 일이 생겼다. 태미 또한 몸이 성하게 끝나지는 않았지만 태미를 붙들고 있던 선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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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아파트 주민이 나르샤기타 2016. 1. 17. 17:20
[육룡이 나르샤] 아파트 주민이 나르샤 *본 글은 ‘육룡’ 아파트에 사는 길 뫄뫄 씨가 쓰신 일기입니다. 일기.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인데, 얼마 전 후배가 암호도 아니고 글을 해도 해도 너무 못 써서 보고서만 보고는 대체 무슨 내용인지 유추할 수가 없으니 제발 뭐라도 쓰는 연습을 좀 하라고 했다. 그래서 쓴다. -2016.01.01 안 쓰다 쓰려니 맨날 까먹는다. 적룡아, 미안하다. -2016.01.08 뭐 쓰지. -2016.01.09 쓸 게 없다. -2016.01.10 적룡이랑 김치볶음밥 먹었다. 좀 짭더라. -2016.01.11 어제 야간근무하다 집에 갔더니 태미…(찍찍 그어져있다)가 아랫집 사람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뭔 얘길 그리 시끄럽게 하나 들어봤더니 얘기하는 게 아니라 싸우는 거였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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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화루 (花淚)기타 2016. 1. 17. 13:26
[육룡이 나르샤] 화루 (花淚) ‘길태미가 죽었다.’ 어젯저녁부터해서 개경을 빠져나오기 전까지 저작거리를 크게 울리던 음성이다. 선미는 포대자루에 싸인 한 인형을 어깨에 들쳐 메고 빠른 속도로 달렸다. ‘제발. 형님.’ 아우님의 음성이 귓가를 아른거린다. ‘이제사 형님이라 부르지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응?’ 선미는 눈가를 스치는 바람이 매서워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꽉 움켜쥔 포대가 미동조차 없다. 힐끔 제 어깨에 시선을 두었다가 저 멀리 보이는 초가에 눈을 고정시킨다. 거의 다 왔다. 별 말은 안하지만 간간히 들려왔던 신음으로 보아서, 고신 깨나 당한 모양. 이 자의 몸이 회복될 때까지는 저 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서 선미는 숨을 골랐다. 성인 사내 하나를 업고 하루를 내리 뛰었더니 저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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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무릎베개기타 2016. 1. 17. 12:09
[육룡이 나르샤] 무릎베개 태미와 선미는 원수가 따로 없으리만치 얼굴을 보기만하면 서로에게 칼부터 들이밀곤 했다. 마침 이번에도 오랜만에 만나 한참을 투닥이던 차다. 얼마나 칼을 섞었을까 먼저 칼자루를 놓친 태미가 숨을 고르며 풀숲에 드러눕는다. 선미는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새 실력이 상했나. 아니, 그건 아닐 테지.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얼굴색이 좀 안 좋긴 했다. 선미의 마음에 걱정스러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것이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할 즈음 태미가 불쑥 손짓한다. “야, 여기 좀 앉아봐.” 지친 음성이었다. 툭툭 제 곁을 치고는 축 늘어지는 태미의 손.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 선미는 걸음을 뗐다. 마지못한 표정으로 곁에 앉아 무릎을 내어주는 선미의 모습에 태미가 너무도 당연스레 그 무릎을 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