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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제일검기타 2016. 1. 17. 11:34
[육룡이 나르샤] 제일검
태미가 죽기 전날 밤, 선미가 찾아왔다. 몇 년 만에 찾아와놓고 하는 말이 우스워 태미가 한쪽 입꼬릴 당긴다.
‘함께 가자’고? 나보고, 이 삼한제일검보고 검의 대결로 그놈을 이기지 못할 테니 도망가라. 지금 그 말이야?
“웃기는 소리 좀 작작해.”
태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선미는 가만히 아우님을 바라보았다. 태미는 실컷 승질을 부리다 문득 선미를 돌아보았다. 간만에 봐서 그런가 형님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태미였다.
“제일검이 왜 제일검인줄 알아?”
그렇게 묻고, 태미는 추궁하듯 선미를 바라본다. 선미는 답 없이 마주보았다. 불쾌한 듯 눈썹을 찡그리지도 짜증내듯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태미는 입을 떼었다.
“내가 여기서 내려올 때는, 내 검이 꺾일 때뿐이야.”
고집스런 태미의 모습에 선미는 묶어놓은 제 검집을 매만지다가 돌아섰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제 아우를 설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 그리해라, 그럼.”
이기지 못한다면 거기까지인 거겠지. 선미는 더 이상의 설득을 포기하고 발길을 떼었다. 수년만의 만남일진대 이리 빨리 떠나는 것은 형제의 도리가 아니라든지 하는 그런 낯부끄러운 핑계 따윈 대고 싶지 않았다. 벌써 남처럼 지낸 것이 수십 년이다. 이별이 무어 별 거라고.
그래. 그것이 무어 별 거라고. 선미는 느려지는 걸음을 재촉한다.
선미는 태미를 떠났고, 머지않아 태미 또한 선미를 떠났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날 이후, 눈이 오는 겨울이면 선미의 머릿속엔 꼭 제 쌍생이 떠올랐다. 납득이 가지 않았다. 떨어져 지낸 것이 한두 해도 아닌데, 왜 하필 그날 이후 눈만 내리면 제 아우가 생각나는지.
그리고 어찌하여 이리도 숨통이 죄는지.
선미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