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육룡이 나르샤] 화루 (花淚)
    기타 2016. 1. 17. 13:26

    [육룡이 나르샤] 화루 (花淚)

     

     

     

     ‘길태미가 죽었다.’

     

     

     어젯저녁부터해서 개경을 빠져나오기 전까지 저작거리를 크게 울리던 음성이다. 선미는 포대자루에 싸인 한 인형을 어깨에 들쳐 메고 빠른 속도로 달렸다.

     

     ‘제발. 형님.’

     

     아우님의 음성이 귓가를 아른거린다.

     

     ‘이제사 형님이라 부르지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

     

     선미는 눈가를 스치는 바람이 매서워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꽉 움켜쥔 포대가 미동조차 없다. 힐끔 제 어깨에 시선을 두었다가 저 멀리 보이는 초가에 눈을 고정시킨다. 거의 다 왔다. 별 말은 안하지만 간간히 들려왔던 신음으로 보아서, 고신 깨나 당한 모양. 이 자의 몸이 회복될 때까지는 저 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서 선미는 숨을 골랐다.

     

     성인 사내 하나를 업고 하루를 내리 뛰었더니 저 또한 지쳐 몸이 굳어질 지경이다. 이제 다 가까워진 초가 앞, 선미는 버려진 듯 성한 곳 없는 초가집 풍경을 훑어보다 우뚝 멈춰 섰다.

     

     간간히 느껴지던 어깨 위의 떨림이 끊겼다. 선미는 서둘러 포대를 내려놓고 고정하느라 묶어놓았던 끈을 풀었다.

     

     턱하니 숨이 막혔다. 포대를 푸르던 그대로 선미는 우뚝 굳어버리고 말았다. 선미의 손아귀에서 흘러내린 포대자루가 바닥으로 쓰러지고, 그 속을 가득 메우던 것이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그래. 포대를 한가득 메운 것은 사람이 아닌, 연한 분홍빛의 아름다운 벚꽃이었다.

     

     벙 찐 선미의 시야에 끝없을 것 같던 꽃잎이 바닥에 흩어지고 그제야 사람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우가 그리도 저 스스로를 버려가면서까지 제게 약조하였던 그 사내, 홍 인방.

     

     그 자가 거기에 있었다. 저가 포대에 둘러 몰래 빼내어 온 사내이니 당연히 있어 마땅하다. 헌데. 선미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멀거니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저는 사람을 빼왔지 이리 많은 꽃을 빼온 적은 없었다. 갈피를 잡지 못한 선미의 눈동자가 사내를 향한다.

     

     여기저기 성한 곳 없이 상처투성이인 사내의 몰골에 눈길이 간다. 그 다음에는 굳게 닫힌 그 눈꺼풀에, 그 다음에는.

     

     “꽃이…….”

     

     연한 분홍의 색을 띤 꽃잎사귀를 감싸 쥔 양 손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꽃잎과 함께 눈 어귀를 한 아름 쥔 채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인방의 눈가에서 미처 떨어져 내리지 못한 꽃잎이 붙어있다 그제야 툭하니 떨어진다.

     

     선미는 정신이 멍해졌다. 저가 숨을 멈추었던 것도 잊었다. 그제야 왜 이리 많은 꽃잎들이 저 사내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인지 깨달았다.

     

     그 옛날부터 내려오던 구담이 하나 있다. 요즘 것들은 모를 아주 오래된 것이라 저로써도 가물가물한 기억. 선미는 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하는 이 잃게 되면 마음의 병을 얻게 되고, 남몰래 그것을 마음에 눌러 담으면 그 자리에 꽃이 하나 핀다네. 그렇게 담아둔 마음의 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에나야…….

     

     “눈물 되어 흐르리라.”

     

     그 꽃, 눈물 되어 흐르리라.

     

     사내는 살아남았다. 허나 아우, 태미는 살아남지 못하였다. 사내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으며, 매일 밤낮을 울었다. 아니. 운 것인가 꽃을 피운 것인가 이루 말할 길이 없다. 선미는 바닥 한 가득 쌓인 꽃잎이 썩어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내는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하루 내내 눈가를 감싸 쥔 채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하였다.

     

     ‘사돈, 사돈을사돈만이라도 살아야지. ?’

     

     절절하였던 아우의 음성이 귓가를 맴돈다. 선미는 시큰한 누가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저것이 산 것이랴. 곧 아우를 따라 이승을 떠나게 되겠지. 덜컹, 갑자기 느껴지는 움직임에 선미가 눈을 치떴다. 한나절 그 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하던 인방이 돌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것이다.

     

     힘겹게 열린 입이 숨을 들이켜고 무언가를 뻐끔이며 말한다. . 첫 글자를 읽어낸 선미가 멈칫하였다.

      

     “사돈.”

      

     가는 음성이 간신히 선미의 귓가에 닿는다. 그리 흘린 꽃눈물 탓인가. 새빨갛게 충혈된 눈자위가 선미를 향했다. 선미를 향해 사내의 손이 천천히 뻗어진다. 힘이 없어 바들거리던 그 손이 결국 휘청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선미는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그 손아귀를 낚아채었다. 차갑고 앙상한 손가락이 제 손에 잡힌다. 반대손으로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인방의 몸을 받고 품으로 끌어안았다.

     

     사돈. 중얼거리는 인방의 음성이 희미하다.

     

     선미는 가만히 그 목소리를 들으며 후회했다. 이 자를 빼내어오지 말았어야 했는가. 이럴 것이었다면 차라리. 아우님과 함께 보내줄 것을.

     

     고맙습니다. 사돈.

     

     갈라진 숨결이 서서히 끊어진다. 구명줄 쥐듯 제 옷깃을 그러쥔 인방의 손을 선미는 내치지 못하였다. 한참을 굳어있던 선미의 눈동자가 서서히 떨어진다. 숨이 사그라진 사내에게로. 서서히. 선미는 이미 죽어 없어진 아우에게 들리지 않을 말을 뱉어냈다.

     

     차라리 네가 구했어야한다. 아우야


     그랬더라면 너도 살았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이 자도 이리 쓸쓸히 남겨지진 않았을 것인데……. 먹먹한 가슴에 선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꾹 눌러 감은 선미의 눈가에서 무언가 후두둑 떨어진다. 얼핏 내려다본 발치에는 하얀 무언가가 새로이 내려앉아 있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