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육룡이 나르샤] 무릎베개
    기타 2016. 1. 17. 12:09

    [육룡이 나르샤] 무릎베개

     

     

     

     태미와 선미는 원수가 따로 없으리만치 얼굴을 보기만하면 서로에게 칼부터 들이밀곤 했다. 마침 이번에도 오랜만에 만나 한참을 투닥이던 차다. 얼마나 칼을 섞었을까 먼저 칼자루를 놓친 태미가 숨을 고르며 풀숲에 드러눕는다.

     

     선미는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새 실력이 상했나. 아니, 그건 아닐 테지.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얼굴색이 좀 안 좋긴 했다. 선미의 마음에 걱정스러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것이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할 즈음 태미가 불쑥 손짓한다.

     

     “, 여기 좀 앉아봐.”

     

     지친 음성이었다. 툭툭 제 곁을 치고는 축 늘어지는 태미의 손.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 선미는 걸음을 뗐다. 마지못한 표정으로 곁에 앉아 무릎을 내어주는 선미의 모습에 태미가 너무도 당연스레 그 무릎을 벤다. 선미의 허벅다리 위로 조금 전 선미의 검집에 의해 풀어헤쳐진 태미의 머리칼이 쏟아져 내린다.

     

     “. 편하다.”

     

     태미가 한숨 쉬듯 호흡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선미는 가만히 태미를 내려다보았다. 마주칠 적마다 싸우기만 했던 둘이었는데, 그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가. 이리 고요한 상황이 낯설어 선미는 곤히 감긴 태미의 눈두덩을 바라보다 문득 제 옷 위로 쏟아진 머리칼에 시선을 두었다.

     

     야, 뭐해. 라고 평소 같았으면 날카로운 음성이 선미를 때리고도 남았을 게다. 선미는 제 손에 쥐인 머리칼을 힐끔 보고 태미의 동태를 살폈다. 여전히 숨이 고르다. 잠이라도 든 것일까. 선미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무어가 그리 피곤했다고. 선미의 시선이 이번엔 널브러진 태미의 손끝을 향했다. 반사적인 것이었다. 혹여 최근 속이 상할 일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여 밤중에 잠도 못 이루고 하염없이 손톱만 물어뜯은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풀 위에 잠긴 손끝이 다 상해있다. 선미는 미간을 찌푸리려다 제 무릎에서 달싹이는 머리통에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렸다. 쥐고 있던 태미의 머리칼이 팽팽해지고, 그 머리통이 데굴 구른다. 마치 제 무릎에서 떨어지기라도 할 기세인지라 선미는 반대손 검을 던지듯 놓고 얼른 태미의 머리통을 붙들었다. 붙들고서 확인해보니 아주 얼굴이 풀떼기에 처박히기 직전이다. 선미가 찌푸린 얼굴로 중얼댔다.

     

     “이러고서 또 얼굴에 생채기 났다고 얼마나…….”

     

     한숨 섞어 중얼거린 말에 태미가 뒤척인다. 뚝 선미의 음성이 끊겼다. 뒤척임이 잠잠해지자 깊은 한숨과 함께 선미의 표정이 옅게 풀렸다. 머리칼을 쥔 선미의 손가락이 꼼지락 까만 머릿가닥을 파고든다. 그래도 먹을 것은 잘 먹고 지내는 모양이다, 이렇게 머릿결이 고와진 것을 보면. 선미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