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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9 (제레온, 벨져)사이퍼즈 2014. 9. 7. 18:27
[사이퍼즈] 출연 : 제레온, 벨져. “제레온 경.” 곱씹어도 곱씹어도 예쁜 단어다. 아니, 명백히 말하자면 사람의 이름이니 단어라기도 뭣하다. 벨져가 쌉싸름하게 웃었다. 그래. 그 ‘단어’의 당사자도 ‘예쁜’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기도 했다. 무겁게 짓누르는 눈꺼풀을 벨져는 굳게 닫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주변을 감싸온다. “제레온 경.”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불러본다. 눈앞에 익숙한 인영이 떠올랐다. 그래. 제레온, 경. 벨져는 눈앞의 그에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당신을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벨져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제가 고개를 들고 그 얼굴을 마주하지 못할 만치 높았습니다. 해서…….”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켜고, 어느새 마른 입안을 축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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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8-2 (윌라드, 드렉슬러)사이퍼즈 2014. 8. 31. 23:24
[사이퍼즈] 출연 : 윌라드 크루그먼, 샬럿, 다리오 드렉슬러. 조건 : 요즘 흥한 꽃병 컨셉. 드렉슬러를 마음에 둔 윌라드. 그리고 그 마음에 반응한 드렉슬러. “크루그먼, 너무한 거 아니야? 샬럿이 자네한테…….” 벌컥 윌라드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이닥쳤던 드렉슬러가 멈칫하고 그 자리에 굳었다. 방 안은 텅 비어있었다. 막 성을 내며 윌라드를 찾아 들어왔던 그는 이내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가 있으리라 예상했던 책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크루그먼, 그는 매번 이 곳을 떠난 적이 없었다. 아니, 아마 그렇지 않을까 드렉슬러는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가 들이닥칠 때마다 윌라드는 항상 이 책상에 앉아서 마치 저가 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덤덤하게 저를 바라보곤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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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8 (윌라드, 샬럿, 드렉슬러)사이퍼즈 2014. 8. 31. 16:02
[사이퍼즈] 출연 : 윌라드 크루그먼, 샬럿, 다리오 드렉슬러. 조건 : 요즘 흥한 꽃병 컨셉. 드렉슬러를 마음에 둔 윌라드. 거친 기침이 윌라드의 입을 통해 토해진다. 무언가 목에 한가득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차례에 걸친 그 기침은 곧 역한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한참이 지나자 어찔했던 정신이 돌아온다. 숨을 천천히 가다듬고서, 윌라드는 제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어 바라보았다. 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저가 토해낸 것이 바로 ‘꽃’이라고. 그러니까 자신이 그렇게 계속해서 기침을 하며, 결국 토해낸 그것이 지금 제 손에 담긴 이 ‘꽃’이라고. 제 손에 다 담지도 못할 만큼 한 움큼 쥐이다 못해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꽃. 마치 ‘그 사람’을 닮은. 윌라드는 팟하고 주먹을 쥐었다.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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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7 (다이무스, 이글)사이퍼즈 2014. 8. 24. 13:14
[사이퍼즈] 출연 : 다이무스 홀든, 이글 홀든. 조건 : 다이무스가 죽음. 형. 달콤한 그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큰 형. 형아. 이글이 소리 없이 되뇐다. 구슬처럼 혀에 얽혀드는 그 감촉이 나쁘지 않다. 작은 형이 사라지고 나서 큰 형은 더욱 말수가 줄어들었고, 더욱 웃음이 없어졌으며… 자신을 더욱 더 상대해주질 않았다. 이글은 마른 입안을 축이기 위해 입을 여몄다. 형. 작은 형이 나간 뒤로 이제는 별다른 수식어를 붙일 이유도, 필요성도 없어 자주 그렇게 부르곤 했다. 형 아니면 형아. 그것도 아니면… ‘어이’? 이글은 저 홀로 생각하다 킥킥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이’라고 시건방지게 그를 부를 때마다 그는 반응했다. 무시로 일관하던 그 얼굴을 구기고, 이글 자신을 보았다. 그래서 좋았다. 나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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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6 (다이무스, 이글)사이퍼즈 2014. 8. 12. 23:51
[사이퍼즈] 출연 : 이글 홀든, 다이무스 홀든. 조건 : 현대배경. 이글 백수, 다이무스 병 걸린 상태. 다이무스가 집안에 들어섰다. 다른 때완 달리 문소리뿐만 아니라 부스럭대는 비닐소리 또한 같이 들렸다. 이글이 벌떡 일어나 그를 반겼다. “형, 뭐 사왔어?” 평소같으면 소파에 뒹굴대며 ‘왔어?’하고 말았을 녀석인데 비닐봉지 소리가 들리자 귀신같이 알아채고 달려온다. 다이무스가 한심스런 눈길로 이글을 훑곤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때까지 이글은 다이무스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에 눈길이 빼앗긴 채였다. “형, 이거 뭐야? 먹을 거야?” 과자? 아이스크림? 깐족대며 곁을 맴도는 이글을 참다못한 다이무스가 입을 뗐다. “나가.” 칫. 비죽 입을 내밀고서 이글은 결국 형 방을 나섰다. 뭐야. 좀 나눠먹으면 덧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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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5 (웨슬리, 마틴/썰@jekaru_cp)사이퍼즈 2014. 8. 5. 20:51
[사이퍼즈] 출연 : 웨슬리 슬로언, 마틴 챌피. 조건 : 제카르(@jekaru_cp)님의 썰에 의거, 누군가의 소개로 우연히 둘이 만나 첫 인사를 나누게 된 이야기. 마틴은 웃으며 손을 건넸다. 악수를 하기 위함이었다. “마틴 챌피입니다.” 그러며 상대의 뇌파를 읽었다. ‘웨슬리 슬로언’. 다른 이들보다 유난히 머릿속이 복잡한 인간이다. 그러나 그뿐, 그로부터 흘러드는 생각에 유달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사내가 마틴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부탁하네. 웨슬리 슬로언일세.” ‘성실해 보이는 청년이군.’ 마틴에게 남의 생각을 읽는 것쯤은 익숙한 일이고, 초면의 이러한 감상 또한 낯선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겪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첫 대면 때 상대에 대한 감상을 무심코 떠올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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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4 (윌라드, 샬럿)사이퍼즈 2014. 7. 23. 19:12
[사이퍼즈] 출연 : 윌라드, 샬럿. “아저…….” 윌라드의 옷깃을 붙잡고 무심코 입을 뗐던 샬럿은, 금세 입을 다물고 다시 열어야 했다. 힐끔 저를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샬럿이 살짝 윌라드의 곁에 붙었다. “저, 이사 님.” “네, 샬럿 양.” 부드럽게 깔린 윌라드의 음성이 샬럿을 향했다. 샬럿은 그제야 주변을 살피던 시선을 떼고 윌라드를 보았다. 따듯한 시선이 샬럿을 향한다. 샬럿은 서서히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뒤에 말을 뱉는 것은 많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왜 사람들은 제가 이사 님께 아저씨라고 부르는 걸 싫어할까요?” 조심스러움과 섭섭함이 깃든 음성이라 윌라드는 생각했다. 윌라드는 되레 반문했다. “누가 샬럿 양에게 그런 이야길 했습니까?” “아, 아뇨. 그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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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3 (제레온, 벨져, 자네트, 다이무스, 이글/썰@jekaru_cp)사이퍼즈 2014. 7. 21. 16:44
[사이퍼즈] 출연 : 제레온, 벨져, 자네트, 다이무스, 이글 조건 : 제카르(@jekaru_cp) 님의 트윗썰에 의거. 제레온은 자신의 딸 자네트가 부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 ‘좋은 사람’인즉슨, 딸아이 같지 않게 조용한 자네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를 수 있도록 밝음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연약한 우리 딸애를 지킬 수 있도록 꺾이지 않는 강함을 지니고, 겉 매무새 또한 깔끔하며, 대장부답게 포부 또한 당찬… 그러한 사내 중의 사내 말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홀든 가의 벨져 군이라던가. 제레온은 퍼뜩 떠오르는 한 꼬마를 되짚었다. 맹랑한 꼬마였다. 쓸 데 없이 자신감은 넘치다 못해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줄줄 흘러댔으며, 그에 비해 실력은 귀엽기 짝이 없는 건방진 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