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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차갑고 따듯한기타 2016. 1. 17. 09:59
[육룡이 나르샤] 차갑고 따듯한
데굴데굴 구르던 태미가 아랫목에서 우뚝 멈춘다. 그러고는 한참을 있기에, 가만히 정좌로 앉아있던 선미는 처음으로 눈썹을 꿈틀하고 움직였다. 왜 그러냐는 듯한 모습에 태미가 한탄하듯 말한다.
“춥고 따듯한 곳에 굴러다니고 싶어.”
춥고 따듯한 곳? 선미가 표정을 구겼다. 어이가 없어서 입이 다 벌어질 지경이다.
“그런 곳은 없어.”
선미는 단호하게 말하곤 다시 서책으로 시선을 두었다. 무언가 했더니 또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다. 한심함에 태미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선미는 서책에 집중했다. 아버지가 간신히 얻어온 서책이었다. 태미는 보지 않는다하여 선미 홀로 열심히 읽고 읽어 다 바래어버린 서책.
제 꿈을 그리도 냉정하게 잘라버리고선 저 홀로 책이나 보고 있는 선미가 얄미워 태미는 벌떡 일어나 되물었다.
“왜? 왜 없어? 왜 없는데?”
빽하니 소리치는 것이 아주 못되어 처먹은 꾀꼬리 같다. 선미는 제 팔을 마구 흔들며 소리치는 태미에 마주 손을 흔들어 그를 떼어내고는 귀찮은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저리 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태미는 그런 선미를 닦달하듯 그의 옷자락을 몇 번이고 흔들었다.
“진짜 없어? 왜? 난 그런 데가 좋은데.”
그래도 계속 답이 없자 태미는 별안간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 소리가 아주 땅을 뚫을 기세인지라 책만 바라보고 있던 선미가 결국 서책에서 눈을 떼고 태미를 돌아보았다. 실망한 동생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이라도 던져주려 했던 것이다. 돌아본 선미는 그대로 멈칫하고 한숨을 쉬었다. 선미의 손이 다시 덮었던 서책을 펴든다. 그 등 뒤로 고롱고롱한 태미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선사. 선사.”
훅하니 치닫는 음성에 몽롱하던 정신이 뒤틀린다. 선미는 가만히 누워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잠깐 누워 졸았을 뿐인데 그 찰나에 어릴 적 꿈을 꿀 것은 무어인가. 선미는 가볍게 숨을 고르고 다시 눈을 감았다.
“어디…….”
“예?”
어디? 적룡이 반문하는 사이 선미가 잠에 취한 음성으로 중얼댄다.
“어디 춥고 따듯한 곳 없는가.”
“…예?”
춥고 따듯한…? 이게 무슨 말인가. 적룡은 저가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멍청히 되물었다. 춥고 따듯한 곳이라니. 그런 곳이 있던가. 아니, 애초에 그런 모순된 장소가 이승에 있을 수 있는 곳인가. 그렇다면 선사께서는 이승이 아닌 곳을 찾고 계신단 말인가. 적룡의 머릿속에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차에 재차 선미의 음성이 들려온다.
“어디 그런 곳이 있으면 내게도 소개시켜주게.”
그러며 다시 눈을 감아 잠을 청하는 선미의 모습에 적룡은 저가 선사를 깨우러 왔단 것도 잊고 아, 예. 하고 대꾸하였다. 갑자기 선사께서 왜 이러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허탈하게 웃으며 말이다.
‘눈 위에 누워있으면 차갑고 따듯해.’
철푸덕 눈 밭 위를 구르던 태미가 꺄르르 웃는다. 그를 본 선미가 툭하니 말했다.
‘고뿔에 걸려도 난 모른다.’
어쩐지 뚱한 말투라서 기분이 나빠진 태미는 제 걱정임에도 똑같이 비죽 입을 내밀고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치, 고뿔은 무슨. 아무나 걸리나.’
툴툴대면서도 잠시 눈 바닥을 바동거리다 훌훌 털고 일어나던 태미의 머리통이 떠오른다. 얼굴, 그래. 그 얼굴은 어땠더라. 작고 동그랗던 그 얼굴은… 어땠더라. 저와 같은 얼굴임에도 그것이 잘 떠오르지 않아 감은 눈을 찡그리고 있던 선미는 문득 들려온 음성에 눈을 떴다.
“선사.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떨떠름한 음성과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적룡과 눈이 마주쳤다. 가만히 눈 속에 누워있던 선미가 일어나 앉았다. 선미의 등자락이 아주 흠뻑 젖었다. 적룡은 괴상한 것을 보듯 선미를 보았다. 이 작자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은 게다. 그것을 알아챈 선미가 툭하니 답한다.
“따듯하더군.”
예? 적룡이 반문했다. 이게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적잖이 당황한 적룡이 눈만 깜빡일 때에 선미가 제 옷에 붙은 눈덩이를 훌훌 털고 일어나며 덧붙인다.
“차갑기도 하고.”
아예. 그러시겠지요…. 적룡은 떨떠름하게 답하며 선미를 이상한 눈으로 훑었다. 길 선사가 불상 앞에서도 모자라 이젠 아주 눈 바닥에서까지 드러눕다니, 드디어 미친 것인가 속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