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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악연기타 2016. 1. 17. 10:55
[육룡이 나르샤] 악연
“정말 대단한 악연이군.”
선미의 차가운 음성이 귓가에 스민다.
“이미 한 번 경고했건만.”
그 음성은 비소와 함께 그의 칼처럼 방지를 향해 겨누어졌다. 방지는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었다. 맞닥뜨렸던 검신의 떨림이 칼자루를 쥔 손바닥까지 이어졌다. 저릿한 손을 쥐었다 펴며 혼란스런 눈으로 선미를 훑었다.
다르다. 어릴 적 만났던 길선미와는……. 찌푸려진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던 방지의 시선이 사내의 눈동자에서 멈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눈, 그때와 다르면서 같은 눈이다.
‘이 아이를 지켜주시오.’
잔잔하던 그 음성이 문득 귓가를 스친다. 그렇게 말했었잖아, 당신. 방지가 울컥하여 속으로 외쳤다. 눈치로는 분명 저를 아는 눈치다. 헌데 왜. 방지는 무심코 이를 악물었다가 제 손아귀에 잔뜩 힘이 들어간 것을 깨닫곤 온몸에 힘을 풀었다.
“당신, 나 기억하는 거 같은데.”
방지의 말에 선미가 잠시 입을 다문다. 조용히 방지를 보는가 싶던 그는 곧 비식 웃음을 지었다.
“기억하지. 그래서.”
그래서. 무어 어쩌라고. 건조한 말투가 방지를 찌른다. 칼에 베인 것도 아닌데 서늘한 검신에 몸을 내어준 느낌이다. 방지가 마른침을 삼켰다. 뭐가 어찌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혼란스런 표정으로 우두커니 선 방지를 뒤로하고 선미가 돌아선다. 문득 방지의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흘러들었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마라. 이미 한 번 당해보지 않았느냐.”
그날, 그때의 음성이었다. 방지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역시, 역시 당신 그때 그 길선미 맞잖아. 울컥하여 소리치고 싶었으나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봐도 당사자는 벌써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홀로 남은 공터에서 방지는 복잡한 감정으로 뒤얽힌 제 가슴께를 감싸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