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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룡이 나르샤] 현대AU 육룡아파트의 주민들
    기타 2016. 2. 7. 14:48

     [육룡이 나르샤] 현대AU 육룡아파트의 주민들

     

     

     

     여기는 평화롭고 한적한 육룡아파트, 2016년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먼~쥐가 되어어~!”

     

     아니,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입니다. 벽 너머로 시끄럽게 들리는 노랫가락에 청년이 부스스하게 일어납니다. 퀭한 눈으로 이불 속에 멍하니 앉아있던 청년은 곧, 푹 고개를 숙입니다.

     

     “작은 가쓰음으으을~!”

     

     2절이 시작된 것입니다. 청년의 방 시계는 아직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참지 못하고 방지는 침대를 나섭니다. 방문을 열어젖히는 그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습니다.

     

     똑똑 청년의 손이 앞집 현관문을 두드립니다. 조금 전 노랠 부르며 들어간 사람을 소환하기 위해섭니다. 똑똑, 똑, 똑똑똑 아무리 두드려도 나오지 않는 인영에 청년은 앞집 문을 가만히 바라보다 손을 올렸습니다. 이러긴 싫지만 벨을 눌러 이 집의 온 가족들이 깨어나든 말든 상관없이 서둘러 이웃 간 소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청년의 손이 인터폰 위에 닿으려는 순간, 벌컥 현관이 열립니다.

     

     “뭐야아. 누군데 이 밤중에 남의 집 대문을 두들겨어?”

     

     잔뜩 술에 취한 아저씨하나가 막 인상을 쓴 채 버럭 삿대질을 합니다. 청년은 끔뻑, 피로한 눈을 한 번 깜빡이곤 물었습니다.

     

     “503호 되십니까…….”

     

     얼마나 피곤하고 잠을 못 잤던지 목소리가 아예 잠겨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며칠 따위가 아니라 이사를 오고 나서 지난 두어 달 간 저 아저씨의 고성방가에 노출되어 고문 아닌 고문을 받아온 504호 청년, 이 방지였습니다.

     

     다짜고짜 야밤에 찾아와선 503호냐고 묻는 청년이 수상하여 503호 아저씨 백윤은 게슴츠레 눈을 흘깁니다. 혹 집을 털로 온 범죄자는 아닐까 의심이 들지만 슬리퍼차림에 꾀죄죄한 차림을 보아하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서 퀭한 청년의 눈을 빤히 마주보았습니다. 지그시 노려보는 그 눈매가,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 같아 백윤은 흠칫하며 물러섭니다.

     

     “그으래, 맞는데. 왜?”

     

     술에 취해도 잔뜩 취했는지 비틀하며 물러서고 말도 더듬는 백윤에 방지는 그제야 만족하고 고개를 주억이며 시선을 돌립니다. 그리곤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듭니다.

     

     “그래…….”

     

     그럼 됐다. 지친 음성으로 방지는 한숨과 함께 핸드폰 키패드를 누릅니다. 누른 번호는 다름 아닌 112 경찰의 번호입니다. 멀찍이 물러나서 흘기듯 바라보기만 하던 백윤이 뒤늦게 반짝이는 핸드폰 액정을 보고선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다가섭니다.

     

     “당신 무어야! 너어 뭔데 갑자기 경찰에 전화를 하고 난리야? 으응?”

     

     허겁지겁 방지의 핸드폰을 뺏어들려던 백윤은 이리저리 핸드폰을 빼돌리며 몸을 피하는 방지 덕에 빽빽 소리만 지르고 계속해서 헛손질을 할 뿐입니다. 지금 시각 새벽 3시. 골이 울릴 정도로 빽빽 소리치는 백윤 덕에 방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주민이 깨어납니다.

     

     “야! 시끄러워! 잠 좀 자자, 잠 좀! 응?”

     

     바로 위층 603호에 사는 길 씨 형제 중 아우인, 길 태미 씨였습니다.

     

      

     

     

     일기(日記). 태미는 그 글씨가 휘갈겨진 공책을 가만히 바라보다 표지를 슬쩍 열었다.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인데, 얼마 전 후배가 암호도 아니고 글을 해도 해도 너무 못 써서 보고서만 보고는 대체 무슨 내용인지 유추할 수가 없으니 제발 뭐라도 쓰는 연습을 좀 하라고 했다. 그래서 쓴다. -2016.01.01

     

     안 쓰다 쓰려니 맨날 까먹는다. 적룡아, 미안하다. -2016.01.08

     

     뭐 쓰지. -2016.01.09

     

     쓸 게 없다. -2016.01.10

     

     그는 그대로 무너지며 입을 틀어막고 바들바들 떨었다. 이게 무슨 일기야? 이럴 거면 쓰지 말라고, 후레자식아. 완전 성의 없잖아!

     

     적룡이랑 김치볶음밥 먹었다. 좀 짭더라. -2016.01.11

     

     투덜댈 거면 지가 만들어 먹던가. 왠지 일기 속의 적룡이라는 자가 불쌍해져 태미는 퍽퍽 일기장을 넘기며 입을 비죽였다. 쌍둥이 동생인 저가 생각해도 제 형님은 이상한 점이 참 많다. 싸가지가 없다던가, 오르지 못할 나무를 몇 십 년 째 바라만 보고 있다던가. 여튼. 태미는 고개를 젓고 다시 일기장을 넘겨보았다. 이 같잖은 일기에 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궁금했던 탓이다. 호기심 가득한 그의 눈이 일기장 속지를 후루룩 훑어가던 와중 어느 한 곳에서 멈춘다.

     

     어제 야간근무하다 집에 갔더니 태미…(찍찍 그어져있다)가 아랫집 사람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본인 얘기가 나온 것도 나온 것이지만, 여백의 미만 가득하던 다른 페이지에 비해 글씨가 제법 빼곡히 적힌 탓이다. 오호라, 눈을 반짝이며 태미는 휘갈겨진 형님의 필체에 눈길을 주었다. 저 대충 지워진 자리엔 대체 무슨 글자가 있었던 것일까 잠시 추측해보던 그는 잠깐 얼굴을 찌푸렸다가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대충 넘기고는 다음 문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 뻔하지 않겠는가? 저가 후레자식을 후레자식이라 부르는 것처럼 지도 뭐라고 써놨겠지.

     

     뭔 얘길 그리 시끄럽게 하나 들어봤더니 얘기하는 게 아니라 싸우는 거였다. 명찰을 찾다가 생각해보니 서에 두고 나왔길래 명함 꺼내서 들려주곤 아직 서에 있을 적룡에게 인도했다. 그러고 동생…(마찬가지로 찍찍 그어져있다)까지 보내고 조용히 TV나 보려고 했더니 하도 빽빽대며 시끄럽게 굴어서 결국 같이 갔다.

     

     아, 저번에 그날 얘긴가? 갸웃하고 그는 그날의 일을 잠시 떠올렸다.

     

     “아니, 이 놈이 갑자기 대뜸 남의 집 두드리더니 ‘503호…되십니까…’이랬다니까?”

     

     “…노래가 너무, 시끄러워서.”

     

     “뭐? 노, 노래? 노래라니. 그게 어떻게 느이 집까지 들려?”

     

     “아악! 시끄러! 좀 조용히 좀 해! 그리구, 그 노랜 나도 들었어! 땡땡땡! 32점!”

     

     “땡? 때앵? 그리고, 32점? 야! 니가 뭔데 점수를 매기고 난리야!”

     

     난리도 아니었다. 그냥 한 대 치고 조용히 시키려다 후배가 말려서 참았다. -2016.01.13.

     

     까득, 태미가 이를 갈며 제 것이 아닌 공책을 와락 구긴다. 이 후레자식을 그냥, 누가 누굴 쳐? 만신창이가 된 종잇장이 태미의 손에서 파르르 흔들렸다. 마침 집안에 들어서던 선미는 그것을 보곤 우뚝 멈춰 섰다. 선미의 인기척을 느낀 태미가 고개를 든다.

     

     “거기서 뭐하냐.”

     

     선미가 물었으나 태미는 답이 없었다. 다만 선미의 일기장을 아주 꾸깃꾸깃 손에 쥐었을 뿐. 마주친 둘의 눈빛이 아주 사납다.

     

     결국 우당탕탕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되는 소리와 함께, 베란다너머 누군가의 한탄 섞인 고함소리가 빼액 울려 퍼졌다. 바로 아랫집 사는 503호 주민 아저씨.

     

     “야, 길 태미! 잠 좀 자자아, 좀!”

     

     백윤의 음성이었다. 태미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난다. 야? 야아, 길 태미이? 획하니 돌아버린 태미의 눈에 선미가 눈썹을 찡그렸다. 성격이 저리 가벼워서 어쩌나. 어차피 말릴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지만……. 벌써 저를 지나쳐 현관문을 나서는 제 아우의 뒷모습에 선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침 9시 24분, 느지막이 일어난 태미가 여유롭게 눈 화장을 그리고 있을 무렵.

     

     “으아아아악-!”

     

     갑작스런 비명에 태미 손이 삐끗하고 허공을 빗겨간다. 상황을 판단하느라 3초가 지나고 나서야 태미는 손에 쥔 아이라이너를탁하니 화장대에 내려놓았다.

     

     “백윤 이 아저씨를 그냥….”

     

     이익, 불끈 쥔 두 손과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태미가 방을 나선다. 대체 이번엔 또 무슨 일이기에 아침 댓바람부터 소음공해를 일으키는지, 이번에야말로 멱살을 잡고 탈탈 털어서라도 알아내고야 말겠다며 씩씩대며 아래층으로 내려간 태미는 본의 아니게 활짝 열린 503호 현관문에 멈칫했다.

     

     뭐야, 왜 문이 열려 있어. 태미가 가만히 문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다 큰 사내가 엉엉 우는 소리가 아파트 복도 한복판에 울려 퍼진다. 태미가 휙하니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넌 왜 또 거기 있어?”

     

     504호 청년 방지가 퀭한 눈으로 태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리에는 바로 백윤을 대롱대롱 달고서 말이다. 태미는 벙 찐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베, 벱, 베, 베베란다에, 베란다에 와, 완, 완전 큰 버벌레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백윤의 삿대질을 따라 태미의 시선이 움직인다. 503호. 백윤의 집이었다. 대체 뭐가 있기에 저런 반응이야. 미묘해진 표정으로 태미가 백윤의 집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베란다’라고 했지? 태미는 머뭇거림도 없이 백윤의 집안으로 들어서선 곧장 베란다로 향했다. 같은 구조, 다른 가구들이 한가득인 집안이라 느낌은 미묘했으나 태미가 눈길을 준 것은 단 하나였다.

     

     베란다에 있다는 그 의문의 벌레. 대체 얼마나 크기에 성인 남성이 무서워할까 생각하며 베란다를 본 순간, 태미는 설마 했다.

     

     설마 아니지? 잠시 그 자리에 멈추었다가 태미가 다시 걸음을 떼어 의문의 벌레를 향해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것은.

     

     “설마… 이 오징어를 가지고 벌레라고 한 건 아니지?”

     

     그치? 응? 베란다 펜스에 반쯤 걸쳐진 마른 오징어의 다리를 들어 올리며 태미가 설마설마하는 표정으로 돌아본다. 마주친 것은 할 말 잃은 백윤의 모습. 툭 태미가 오징어를 떨어뜨렸다.

     

     “아니, 나는 그게애….”

     

     어떻게든 변명하려 안절부절하던 백윤은 서슬 퍼런 눈을 한 태미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덜컥 겁이 나 어떻게든 화제를 바꿔보려 노력했다.

     

     “근데 눈이 왜 그래? 한쪽이… 으아아아악!”

     

     그 노력은 대실패했다.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조용히 할… 컥, 켁! 켁, 미아눼, 미아놔돠거어! 켁켁!”

     

     태미에 의해 멱살이 잡힌 백윤은 새빨개진 얼굴로 싹싹 빌며 함께 있던 모범 청년 방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으나 그는 이미 온데간데없다. 왜냐하면…….

     

     “가서… 자야지.”

     

     방지는 이미 503호 현관이며 본인 집 현관이며, 문이란 문은 모조리 꼭 잠그고서 제 방 제 침대로 돌아온 지 아주 한참 되었으니까 말이다.

     

     

     

     삑삐빅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선미는 TV를 보던 그대로 귀만 잠시 기울였다. 익숙한 발소리를 보아하니 태미가 온 모양이다. 선미는 아랑곳 않고 다시 TV화면에 열중했다. 왜인지 그 발이 곧장 저 방을 향하지 않고 선미가 있는 거실을 향한다.

     

     훅하니 눈앞에 나타난 네모난 상자. 끔뻑끔뻑 눈을 깜빡이며 그것을 바라보다, 선미는 그것이 TV화면을 가리지 않도록 슬쩍 밀어냈다. 에이씨, 하고 태미가 승질 부리며 다시 그것을 선미의 눈앞에 들이민다.

     

     “야 길선미, 이거 맞춰줘.”

     

     “싫다면.”

     

     “죽고 싶어?”

     

     퉁명스레 대꾸하는 선미에 태미는 이빨을 드러냈다. 같잖은 협박에 선미가 비식 웃었다. 선미의 답은 없었으나 태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상자를 거실 탁 위에 두었다. 그러며 탁 위에 너부러진 오징어와 맥주캔을 보더니 “치우고 좀 살아, 이 후레자식아!”라느니 “곰도 아니고 왜 그리 뒹굴대”냐느니 잔소리를 좀 하더니 그는 곧 다시 밖을 향한다.

     

     “나 저녁 먹고 온다. 밥 알아서 먹어~”

     

     가볍게 손 인사를 하고서 현관을 나서는 태미는 기분이 좋은 듯 익숙한 노래를 흥얼댔다.

     

     앞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랑 잘 맞는 것 같다더니 그새 친해진 모양이다. 천하의 길 태미가 밥도 같이 먹고. 현관이 닫히기 전 들렸던 낯익은 목소리에 얼추 상황을 유추해본 선미는 가만히 TV를 보던 시선을 떼어 눈앞의 상자를 바라보았다.

     

     1000ps짜리 퍼즐. 두어 번 눈을 깜빡이다 어이가 없어 결국 웃고 만다.

     

     500ps짜리도 못 맞추면서 왜 맨날 저런 걸 사오는지. 선미가 한숨을 쉬며 드러누워있던 소파에서 내려와 탁 앞에 앉았다. 그의 손이 익숙하게 퍼즐 상자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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