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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룡이 나르샤] 천둥번개
    기타 2016. 4. 23. 00:00

     [육룡이 나르샤] 천둥번개

     

     


     두 형제가 어릴 적이었다. 낡은 초가에 살며 이런 일 저런 일 함께 견뎌온 선미와 태미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생임에도 둘은 무척이나 달라 얼굴을 제외하곤 과연 쌍둥이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선미는 의젓하였고, 태미는 어여뻤다.

     

     사내아이에게 어여쁘단 말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태미는 웃음마저 어여뻤고 활발하지 못한 선미와 반대로 호기심도 많고 늘상 밝았다.

     

     하여 선미는 제 아우인 태미를 지켜주려는 경향이 있었고 태미 또한 제 쌍둥이 형인 선미를 제법 의지하였다. 거의 일방적이었던 그 마음이 처음으로 변화를 보인 것은 아직 그들이 어렸던 어느 날, 땅이 꺼질 듯 비가 내렸던 때이다.

     

     쏴아아 빗줄기가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하늘은 번쩍하고 울었다. 허름한 초가지붕에선 이미 빗물이 세기 시작했다. 지붕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해도 모자랄 판국임을 태미는 아는지 모르는지 빤히 어느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어린 태미의 눈에 반짝하고 재차 하늘이 운다.

     

     쩌억 갈라지는 빛줄기가 마치 하늘에 핀 나뭇가지 같았다. 그것이 신기하여 넋을 놓았던 태미는 곧 상기된 얼굴로 제 형제를 찾았다.

     

     “야, 길 선미! 저거 봐봐, 신기하지?”

     

     서둘러 제 형제에게도 저 신기함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보란 듯이 저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한 태미가 곧 멈칫하고 손을 내렸다. 콰르릉, 하늘이 울었다. 흠칫 떠는 형제의 어깨가 반짝이는 빛에 파묻힌다.

     

     두 눈을 깜빡이며 태미는 선미를 바라보았다. 선미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린 채 굳어있었다. 새파랗게 물든 선미의 입술이 뒤늦게야 떼어졌다. 천천히 열리는 그 입술이 “그러게.”하고 힘없는 목소릴 뱉어낸다. 곧이어 또다시 천둥이 쳤다.

     

     콰르릉, 번쩍. 선미는 또다시 몸을 움츠렸다. 이번엔 태미의 시선을 속이지 못했다. 두려움을 온전히 내비친 선미의 얼굴에 태미는 가만히 입을 뗐다.

     

     “야, 길 선미.”

     

     너 설마 번개가 무서워? 아우의 음성이 또다시 내리치는 천둥에 먹혀버린다. 선미의 어깨가 파드득거리며 들썩였다. 연달아 울리던 천둥번개에 선미는 정신까지 굳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선명하게 들리는 태미의 웃음소리에 선미가 정신을 차렸다.

     

     “얼레리꼴레리, 길 선미느은 처언둥번개를 무서워한대요~!”

     

     약 올리는 듯한 태미의 목소리에 선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화를 내려던 선미의 귓가에 재차 번개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굳은 선미의 귓가에 또다시 태미의 음성이 흘러든다. 얼레리꼴레리. 알짱알짱 눈앞을 돌아다니며 산만하게 구는 태미에 결국 선미는 버럭 소리쳤다.

     

     “야, 길 태미!”

     

     동시에 쿠르릉 번개가 운 것도 모르고 선미는 으아아, 도망가는 태미를 쫓아 방안으로 뛰었다. 넓지 않은 방안이건만 태미는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다. 선미는 씩씩 입을 지르물고 목표물을 노려보았다. 종종 싸우긴 싸웠으나, 이렇게 약이 오르게 하는 것은 또 간만인지라 선미는 더 화가 났다. 잡히기만 하면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속으로 다짐하며 아주 발차기까지 날려버릴 각오를 하였을 때, 다시 번쩍하였다. 선미는 이를 가느라 차마 듣지 못하고 몸을 날렸다. 도망치던 태미가 우아악, 하고 선미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드디어 잡았다, 길 태미! 선미가 씩씩대며 태미의 옷자락을 쥐어뜯었다. 선미의 발길질에 맞은 태미 또한 슬슬 약이 올라 씩씩대기 시작했다. 결국 투닥투닥 아주 온 방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뒹굴던 둘은, 한참이 지나서야 헥헥대며 나동그라지며 싸움을 멈추었다.

     

     번쩍, 드러누운 선미의 얼굴 위로 번개가 내리친다. 선미는 그제야 멈칫했다. 방금 천둥소리가 들렸던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재차 천둥이 치고 번개가 떨어진다.

     

     “야. 길 선미. 너-.”

     

     “뭐라고?”

     

     그 소리에 묻혀 아우의 음성이 사그라들었다. 야, 하고 저를 부르는 소리밖에 못 들은 터라 선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태미는 숨을 고르면서 순순히 되읊어주었다.

     

     “아이 차암. 이제 천둥 안 무섭냐구, 이 바보똥개야!”

     

     우이씨. 누구보고 바보똥개래, 형한테. 울컥했던 선미가 비죽 입을 다물었다가 멈칫하였다. 마침 또다시 천둥번개가 내려친다. 선미는 제 몸이 놀라긴커녕 새액새액 호흡만 아주 잘도 내뱉고 있음을 깨달았다.

     

     콰르릉 천둥이 울린다. 이번에 선미는 모든 것을 저 스스로 온전히 인지했음에도 그 커다란 울림에 놀라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 다음도, 그리고 그 다음도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태미가 웃었다.

     

     선미가 제 아우 태미를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또 다른 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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