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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코만들기프로젝트
    순수창작 2015. 12. 11. 01:25

    사이코 만들기 프로젝트

    출연 : 박혁권(박민수), 김희원(김철수)

    조건 : 박혁권 배우님과 김희원 배우님을 보고 갑자기 필 터져서 쓰는 글로 가상의 사건을 다룬다. 살인일기 사이코 vs 피칠갑 사이코 같은 느낌.

    -김철수는 실은, 막 경찰이 되었다고 기뻐했던 남동생을 죽인 살인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하자 경찰로서 회의감을 느끼고 직접 살인자를 살해하고 다님. 저 스스로 사이코살인범이 되기를 자처한 것. 그리고 박민수는 완전한 사이코가 아니라, 어느 정도 학습해서 살아가는 사이코. 완전하게 공감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제대로 된 감정을 느끼지도 못하지만 그 비슷한 감정을 찾아 대응하는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선천적인 사이코이나 부모를 잘 만나서 제대로 자라는 것처럼 꾸며진 사이코패스.

     

     

     

     

     

     

     

     

     

     

     

    민수는 다 쓴 일기장을 한 켠에 놓아두고, 새로 구해온 공책을 펼쳤다. 표지 첫 장에 오늘자 날짜를 적는다. 2015년 12월…. 글씨를 쓰다 말고 잘 나오지 않는 펜을 이리저리 흔들어본다. 2015년 12월 10일. 간신히 적힌 그 글씨를 보며 민수가 중얼거렸다.

     

    “펜도 새로 사야겠네.”

     

    잉크가 다 된 볼펜을 손 안에서 굴리다가 딸깍 펜심을 넣었다. 내일 나가는 길에 사야겠다.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아래 쓰레기통에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민수는 시계를 한 번 훑고 방을 나섰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한밤 중. 옷장이 아닌 현관 벽장에 걸어 둔 외투를 걸치고 그는 집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새빨간 피가 흐른다. 쥐고 있던 칼자루를 타고 미끌미끌한 액체가 사내의 손을 한껏 삼킨다.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이 바들바들 사내의 손을 쥐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내가 쥔, 누군가의 배를 파고든 시커먼 칼자루를 쥐었다. 서서히 굳어가는 핏물 위에 맞닿은 힘없는 그 손을, 사내는 칼을 쥐지 않은 반대 손으로 부드럽게 맞잡고 치워냈다.

     

    “어어. 만지면 안 되지. 다쳐.”

     

    이게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데, 하며 사내가 누군가의 배에 꽂힌 칼을 가볍게 툭툭 친다. 비명이, 찢어져라 울려 퍼졌다. 상대의 몸이 고통을 호소하며 힘없이 무너진다. 사내는 씩 웃었다.

     

    “어때, 재밌지.”

     

    그리곤 상대와 눈을 맞추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되묻는다. 재밌지 않아? 응? 사내의 말에 상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피를 많이 흘려 몸이 둔해졌음에도 주춤주춤 물러서는 그의 걸음을 따라 사내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갔다. 상대가 사색이 된 얼굴로 몸부림을 친다.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픽하니 웃었다.

     

    “왜. 너도 재밌잖아. 이런 거 안 좋아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이 미친 새끼야!”

     

    결국 물러서다 물러서다 힘이 풀려 주저앉은 상대가 질린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와 마주친 사내의 눈이 차갑게 변한다.

     

    “몰라서 물어?”

     

    몰라. 모른다고! 덜덜 떨며 상대는 도리질 쳤다. 대체 넌 누구냐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그는 앉은 상태에서도 있는 힘을 다해 뒷걸음을 쳤다. 아직도 배에 꽂혀 있는 칼을 더듬더듬 뽑아 바닥에 던지고 물러선다. 이미 한 번 덤벼들었다가 된통 당한 것이었다. 자신이 이 칼을 빼든다 해도 되레 당하면 당했지 결코 저 칼은 내게 도움이 못되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이 미친놈에게서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상대는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며 사내의 눈치 또한 살폈다. 기회가 된다면, 단숨에 도망칠 것이다.

     

    그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사내는 훅하니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모른다…. 그래, 그건 모르겠고. 나는 궁금해?”

     

    아악, 배를 짓이기는 고통에 상대가 비명을 지른다. 사내는 다시 씩 웃고 그의 상처를 꾹 누르며 말했다. 비명은 더욱 커졌다.

     

    “김철수.”

     

    김 철수. 그래. 그게 내 이름이지. 뭐 말해줘 봤자 모르겠지만.

     

    사내, 철수의 시선이 상대의 상처로 향한다. 아까부터 퐁퐁 흘러나오던 피는 여지껏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서히 감기는 상대의 눈꺼풀도 그렇고 돌아가는 눈자위도 그렇고, 아마 피가 많이 부족해졌을 터. 아니나 다를까 반사적으로 철수의 손을 붙잡고 있던 상대의 손이 툭 땅에 떨어진다. 철수는 정신을 놓은 그를 빤하게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휴. 이 녀석은 또 언제 옮기냐.”

     

    한숨 섞인 한탄과 함께 피곤한 표정으로 뒷목을 주무르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민수의 어머니는 일기에 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것을 적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래서 민수가 누군가와 싸웠다던가, 누군가가 밉다거나, 누군가에 대해 불만스런 사항을 적으면 민수는 어머니에게 혼이 났다. 언제인가 한 번은 일기가 너무 쓰기 싫어서 아예 쓰지 않은 적도 있는데, 그땐 전에 비할 바 없이 혼나기도 했다.

     

    그래서 민수는 이번엔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하교하는 길에 만난 아픈 강아지가 홀로 누워있기에 저가 꼭 안아주고 땅에 묻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민수는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칭찬을 들었다.

     

    기뻤다. 그래서 그는 매일 그와 같은 일기를 썼고, 어머니께 칭찬을 들었다.

     

    ‘우리 민수 착하네.’

     

    이제 칭찬해줄 어머니는 없고, 그 또한 그것을 위해 일기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는 것은 재밌었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를 즐겁게 해준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고민이 생겼다. 일기에 쓸 것이 점점 떨어져가는 것이다. 기어코 그것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옆에서 같이 TV를 보고 있던 여동생이 말한다.

     

    “미친. 사람이 장난도 아니고 저게 뭐야.”

     

    민수는 멍하니 일기에 대해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여동생에게 시선을 던졌다. 장난? 의아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그에게 여동생, 민아는 턱짓으로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봐,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칼로 수십 번씩 찔렀대.”

     

    “으. 아프겠다.”

     

    일그러진 민아의 표정을 따라하며 민수가 저가 다 아플 것처럼 얼굴을 구겼다. 제 말에 동감하듯 말하는 오라비의 음성에 민아는 그에게서 눈길을 떼고 다시 TV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치? 미쳤어, 진짜. 어우. 무서워.”

     

    몸서리치며 채널을 돌리는 민아를, 민수는 웃으며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장난… 장난이라…….

     

    그래.

     

    장난감을 만들면 어떨까?

     

    곰곰이 생각하던 민수가 웃었다.

     

    “장난감 좋다.”

     

    앉아있던 소파에 몸을 기대고 턱을 괴었다. 어떤 장난감이 좋을까 고민하는 민수의 눈에 즐거움이 한가득 피었다.

     

     

     

     

    오늘 치 실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민수가 한 손에 봉지를 들고 거실로 다가갔다. 요즘 들어 한 장도 간신히 채웠던 일기를, 어젠 다섯 장이나 채웠다. 기분이 제법 나쁘지 않다. 게다가 오는 길에 동생이 좋아하는 호빵까지 발견해서 말이다. 이것을 받고 웃을 동생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민수는 입가에 미소를 걸치며 한 손에 든 봉다리를 동생 앞에 내밀었다.

     

    “이게 뭐야?”

     

    아니나 다를까 반응은 바로 왔다. 문소리가 들릴 땐 아는 체도 안 하더니, 소파에 눕듯이 앉아 TV를 보고 있던 민아가 민수를 향해 고개를 든다. 마주친 까만 눈동자에 민수가 웃는 얼굴로 답했다.

     

    “호빵.”

     

    네가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둥, 해서 오는 길에 보이길래 샀다는 둥 사족을 덧일 필요도 없었다. 민아는 민수에게서 호빵을 전해 받으며 아주 방긋 웃었다. 겨울이라 무척 추웠을 텐데도 호빵은 아직 따끈따끈했다.

     

    “우와, 고마워. 잘 먹을게.”

     

    싱글벙글하며 민수를 뒤로한 채 호빵 하나를 꺼내 무는 민아의 모습에 민수가 웃는 얼굴로 돌아섰다. 그리곤 거실을 등지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메고 있던 가방을 방 한 켠에 내려놓았다. 가방에서 공책 하나를 꺼내어 책상 앞에 앉은 민수는 빼곡히 들어찬 글씨를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보다 백지가 나온 그 부분에서 펜을 들었다. 2015년 12월 14일. 오늘은 또 어떤 일기를 쓸까.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을 떠올리며 민수가 곰곰이 고민에 빠졌다.

     

    […다음 소식입니다. 얼마 전 실종 되었던 강 모양을 기억하십니까. 안타깝게도…….]

     

    그의 방문 틈새로 동생이 틀어 놓은 TV 소리가 어렴풋하게 귓가를 울린다. 동시에 여전히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을 줄 알았던 민아의 음성이 문득 귓가에 들려왔다. 민수는 멈칫하고 손을 멈추었다.

     

    “오빠. 오빠는 내가 저렇게 되면 어떡할 거야?”

     

    빈 페이지에 새로이 일기를 쓰던 것을 멈추고서 민수가 뒤를 돌아본다. 민아는 문고리를 잡고 빼꼼히 고개만 들이민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주친 까만 눈동자에 민수는 깜박 눈을 감았다 떴다.

     

    ‘우리 딸, 누가 괴롭히면 아빠한테 말해. 아빠가 바로 달려갈 테니까.’

     

    기억 속, 익숙한 상황 몇 개가 눈앞에 그려진다. 민수는 고민하다 입술을 떼어 말했다.

     

    “음… 그러면, 오빠가 바로 달려갈게.”

     

    달려가서, 꼭 안아줄게. 다정한 민수의 음성에 민아가 정말이지? 하고 기분 좋은 음성으로 시시덕거린다. 민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걱정하지 마. 민수의 말에 민아는 알았다며 실실 웃고는 문에서 물러나 조심히 그 방문을 닫았다.

     

    “참, 나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서 오늘은 오빠 혼자 저녁 먹어야 돼!”

     

    완전히 닫힌 문 너머로 민아의 음성이 이어진다. 민수는 덩달아 크게 외쳐 답했다.

     

    “그래, 조심히 다녀와.”

     

    응, 내일 봐 오빠. 장난기가 사라진 동생의 음성을 뒤로한 채 민수는 다시 펜을 들었다.

     

     

     

     

     

     

    경찰서 내부는 산만하다못해 거의 재해수준이었다. 정신없이 울려대는 전화하며,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복의 형사들과 몇몇의 경찰 제복의 인물들. 시끄러이 들려오는 내용 중 일부는 ‘연쇄살인’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니, 글쎄 연쇄살인 아니라니까? 그건 같은 놈이 한 게 아니에요. 알아들었어요?”

     

    상대 기자가 그의 심기를 건들기라도 한 것일까, 형사 중 하나는 전화를 받다말고 버럭 소리쳤다. 그 형사는 와락 얼굴을 찌푸린 채 빽하니 연이어 답한다.

     

    “날짜? …그 정보는 어디서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없어요. 이제 그만 물으쇼. 아직 확실한 건 없으니까!”

     

    그렇게 마지막으로 말을 내뱉곤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앞서 그 전화를 받고 있었던 경찰에게 성질내듯 말했다.

     

    “너 앞으로 이런 전화 오면 일일이 답해주지 말고 걍 대충 돌려서 말하고 끊어! 괜히 기자들한테 이상하게 얘기 들어가면 골치 아프니까. 알았어?”

     

    “예, 옙, 알겠습니다.”

     

    이제 갓 제복을 입은 것 마냥 어리숙한 표정의 경찰이 사색이 된 얼굴로 떠듬떠듬 답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철수가 조용히 그 형사를 불렀다.

     

    “서 형사.”

     

    철수의 음성에 응? 하고 고개를 든 그는 여전히 짜증스럽게 일그러져있던 표정을 순식간에 굳혔다. 철수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지만 그는 바짝 몸이 긴장되었다. 아, 시발. 좆됐다. 하는 생각으로 서 형사는 후다닥 그 곁으로 다가갔다.

     

    “예, 반장님.”

     

    깍듯이 부름에 답하면서도, 이 싸이코 같은 놈이 제게 또 무슨 명령을 시킬지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번에 자료 정리한 거 네가 갖고 있지. 좀 줘봐.”

     

    “예?”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서 형사는 철수의 말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삼키고 반사적으로 지었던 표정을 재빨리 수습했다. 그리곤 애써 모른 척 되물었다. 괜히 또 이상하게 휘말리기 싫었다. 저번에도 그랬다. 계속해서 살인 용의자가 죽어나간 이유가 혹시 경찰 측에서 정보가 세어나갔던 건 아니냔 의혹이 나왔다.

     

    그러니까, 정보를 관리하는 놈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보복살인이 생긴 것 아니겠냐는 둥 하는 말이 돌아서 당시 정보를 관리했던 저가 아주 죽어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또 그런 말이 나오게 할 수는 없었다. 그때 먹었던 징계가 얼마나 억울했는데. 서 형사는 굳게 마음을 먹고 떨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한 채 딱딱하게 답했다.

     

    “안 됩니다.”

     

    손톱을 깎던 철수의 손이 멈추었다. 서서히 마주치는 그 시선에 서 형사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안 돼. 안 된다. 이번엔 진짜 안 돼……. 질끈 두 눈을 감고서 서 형사는 결국 그 차가운 눈초리를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아, 진짜… 저번에도-.”

     

    변명처럼 말을 잇던 서 형사의 귓가에 믿기지 않는 말이 들렸다.

     

    “그래? 그럼 됐다.”

     

    “예?”

     

    “그럼 됐다고.”

     

    서 형사는 벙 찐 표정으로 철수를 바라보았다. 철수가 마저 손톱을 깎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 모습이 낯설어서 멀거니 서있는 서 형사에게 철수는 다시 눈길을 주었다.

     

    “안 가냐?”

     

    “아, 예. 예에…….”

     

    얼떨떨하게 제 자리로 돌아가는 서 형사의 모습에 철수는 그제야 온전히 제 손끝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다. 급한 대로 대충 깎아낸 손톱이 찝찝하리만치 삐뚤빼뚤하다. 아이씨, 저 놈 때문에 이상하게 깎였네. 얼굴을 찡그리곤 아무렇게나 손톱깎이를 던져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그에게서 자료를 얻을 필요는 없다. 철수는 걸음을 옮기며 제자리로 돌아간 서 형사 곁을 스쳐지나갔다.

     

    “잠깐 나갔다온다.”

     

    “예? 어디가시게요… 아니, 잠깐. 그거, 반장님! 반장니이이임-!”

     

    억지로 뺏으면 되니까 상관없지. 서 형사의 절규를 뒤로하고 철수가 손에 쥔 파일을 옆구리에 끼고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산더미였다.

     

     

     

     

     

    ‘내가 죽는다고 끝날 것 같아?’

     

    미친놈처럼 일렁이는 상대의 눈동자가 떠오른다. 씩 웃는 입꼬리와 그 입에서 흐르는 새빨간 피. 그리고 손끝에 쥔 날카로운 칼날. 그 날붙이가 깊숙이 살갗을 파고듦에도 상대는 웃으며 눈을 맞추었다.

     

    ‘나 같은 놈은 수도 없이 많아. 앞으로도 무수히 많겠지. 네가 그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을 까? 오히려 누명만 쓰고 끝날걸.’

     

    핏물 가득한 미소가, 죽어감에도 반짝이는 눈빛이, 웃음기 가득한 그 음성이 무겁게 짓누른다.

     

    ‘이해를 할 수가 없네. 네 딸이라도 죽었냐? 아. 그러고 보니 너랑 비슷한 녀석이 하나 있긴 했지. 이름이…….’

     

    턱하니 막히는 숨에 철수는 퍼뜩 눈을 치떴다. 헉, 하고 가쁘게 숨통을 트이며 떨리는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제길. 뒤늦게 악몽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머리를 감싸 쥐며 욕지거리를 삼켰다. 지그시 감은 새카만 어둠 사이로 그날의 기억이 아로새겨진다. 머리칼을 쥐어뜯던 손을 풀었다. 어느 정도 안정된 숨을 고르며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철수의 손은 그날, 첫 살인을 저질렀던 날과 같이 사정없이 떨려오고 있었다.

     

    “좆같은 새끼.”

     

    철수는 한숨과 함께 꾹 눈을 감았다 떴다. 소름이 돋아 바싹 서있던 피부가 서서히 돌아오고 온몸에 흘렀던 식은땀도 완전히 말랐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어젯밤의 기억을 되새겼다.

     

    어젯밤, 경찰이자 살인용의자를 연쇄살인한 범인 김 철수는 또다시 한 명의 살인용의자를 살해했다.

     

    또다시 악몽 속에 빠져들 뻔한 철수의 정신을 요란한 벨소리가 막는다. 일어서다 말고 멀거니 있던 철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으로 시선을 던졌다. 서에서 온 전화였다. 아마, 서 형사나 뭐 다른 형사들 중 하나겠지 싶어 곧장 핸드폰을 받아든 철수는 곧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반장님. 또 터졌습니다. 이번엔, 날짜요.]

     

    근래 들어서 많은 살인 사건들이 터지고 있지만, 개중에 하나 유난히 알 수 없는 놈이 있다면-.

     

    [강 정우, 32세 남성. 이번엔 목 뒤에 있었댑니다. 이 피해자도 실종신고가 3일 전에 있었는데…….]

     

    아마 이 녀석일 것이다. 낯익은 동료 형사의 음성이 수화기 너머 들려온다. 이어지는 말은 듣지 않아도 알겠다. 철수는 시큰한 눈두덩이를 잠시 문지르다 피곤한 음성으로 곧 가겠다고 답했다. 대충 통화를 끝내고 그는 너부러진 옷가지를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실험을 할 때면 그에 사용되는 약품들이 제법 위험하기 때문에 상당히 신중을 기해야한다. 집중해야함은 물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하는 약재들이 상당하다는 말이다. 때문에 보통 함께 실험실에서 일하는 동료들 대부분은 핸드폰을 출근할 때 개인 사물함에 잠시 두고 오는 경우가 많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 혹은 퇴근할 때서야 핸드폰을 확인하는 것이다.

     

    해서 민수도 그들과 함께 그렇게 행동하곤 했기에, 뒤늦게야 핸드폰 가득 남겨있는 부재중 메시지를 발견했다. 문자, 음성메시지… 발신인은 모두 같았다.

     

    ‘동생’

     

    화면에 덩그러니 놓인 그 글자를 바라보다 민수는 메시지 버튼을 눌렀다. 제대로 된 내용이 아니었다. 엉망으로, 민수로서는 어떤 의도인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가만히 그 문자들을 바라보다 이번엔 음성 메시지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메시지를 확인하시려면 1번, 다시 듣기는 0번을 눌러주세요. 1번을 누르셨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합니다. 기계적인 음성이 지나가고 곧이어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다.

     

    가만히 그것을 듣던 민수의 귓가에 돌연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낯선 남성의 음성이 새어들었다. 그리고 메시지는 거기서 끊겼다.

     

    다시 들으시겠습니까? 기계적인 음성이 재차 묻는다. 민수는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그 액정을 물끄럼하게 보았다.

     

    [오빠 ㅅㅏㄹ렺ㅜㅓ]

     

    오빠. 비명과 함께 들린 동생의 음성에선 몇 번 들어봐서 알 수 있는 감정, ‘두려움’이 묻어났다. 민수의 걸음이 떼어진다. 메시지가 남겨진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2시간 전. 5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그 즈음이면 막 하교를 마치고 종종 친구들과 시내에 놀러가곤 했으니, 아마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을 터. 민수는 택시를 잡아타고 집 근처 시내로 향했다.

     

    내리자마자 시내는 왁자왁자 모여든 사람들 탓에 누가 봐도 정신이 없어보였다. 민수의 걸음은 절로 그곳을 향했고, 누군가 그를 발견했는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민수 오빠.”

     

    휙하니 돌아본 그의 시야엔, 동생이 아닌 낯선 여성 둘이 있었다. 동생 또래의 아이들 같아 보였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보니, 친구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왜 그들이 여기 있는지 의아하던 참에 그들의 입에서 낯익은 이름이 흘러나온다.

     

    “오빠, 민아… 민아가.”

     

    그 음색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고, 그들의 표정 또한 울상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민수는 다시 사람들이 모여든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옆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민아의 친구들에게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민수가 발길을 떼었다. 사람들 틈을 지나자 어수선하게 움직이는 경찰 무리가 보인다.

     

    민수는 그들을 지나쳐 새빨간 바닥을 보았고, 익숙한 물건들을 보았으며, 들것에 누여있는 갈색 머리칼을 보았다.

     

    그것은 얼마 전 염색한 민아의 머리색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

     

    막아서는 경찰들에 민아의 친구라는 아이들이 대신 답한다. 그 애 오빠예요! 막아섰던 그들의 손이 사라진다. 민수는 사실, 딱히 그런 건 상관없었다. 다만 기분이 좀 의아해졌을 뿐이다. 무엇 때문일까? 무엇 때문에 이런 기분이 느껴지는 걸까? 민수 앞을 지나던 들것이 어느샌가 그 앞에 멈춰 선다.

     

    익숙한 인영에 덧씌워진 하얀 천.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던 민수의 손이 부드럽게 그 천을 밀어냈다. 갈색 머리칼을 따라 익숙한 이마, 눈, 코, 입이 드러난다. 그것을 바라보던 민수가 몸을 숙여 그 얼굴에 눈을 맞추었다.

     

    ‘오빠. 오빠는 내가 저렇게 되면 어떡할 거야?’

     

    민아의 음성이, 그 표정과 기대가 바로 눈앞을 스친다.

     

    ‘민수는 엄마가 죽으면 어떨 거 같아?’

     

    어린 날, 같은 표정으로 물었던 어머니에게 민수는 답했다.

     

    ‘슬퍼요.’

     

    고민하다 내놓은 대답에 환히 웃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민수는 차갑게 식어버린 민아의 몸을 바라보았다.

     

    ‘오빠. 오빠는 내가 저렇게 되면 어떡할 거야?’

     

    손끝에 닿는 그 볼이 시리다. 민수는 양 손으로 그 볼을 감싸 쥐었다가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그러면, 오빠가 바로 달려갈게. 달려가서, 꼭 안아줄게.’

     

    그날의 기억을 제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무심코 입 밖을 흘러나온다.

     

    “우리 민아, 춥겠다.”

     

    그렇게 말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민수는 떼었던 입을 다물었다. 품안의 동생은 이제 자신을 돌아보지도, 말을 하지도, 웃음을 짓지도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목 뒤에 새겨진 날짜, 2016년 1월 7일. 제법 또박또박한 그 필체에 철수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거 완전 싸이코 아니야? 누군가 그 심정을 대신하듯 중얼거렸다.

     

    “이 새끼 완전 싸이코네.”

     

    진절머리를 내는 그 음성을 뒤로하고 철수는 시체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혹 또 다른 증거가 있을까하여, 찬찬히 둘러보던 그는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하고 다시 시체를 향해 눈을 돌렸다. 정상적인 곳이 없어서 눈 뜨고 보고 있기가 힘들 지경이다. 철수는 한숨과 함께 근처 책상에 잠시 몸을 기댔다.

     

    툭,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고개를 숙이니 작은 USB가 바닥에 나동그라진 것이 보인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 집어 들었다. 느낌이 싸한 게,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장갑 낀 손 안에서 작게 굴려보던 그가 곧 책상에 놓인 컴퓨터로 시선을 주었다.

     

    그의 손은 이미 컴퓨터 전원에 닿아있었다. 딸깍, 돌연 들려오는 마우스 소리에 몇 형사들이 그를 돌아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일을 한다. 괜히 건드렸다간 또 어떤 욕을 보게 될지 모를 테니 말이다.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보던 그가 곧이어 USB의 모든 내용을 자신의 이메일로 복사하기 시작한다. 힐끔 그의 눈이 다시 주변 사건 현장에 꽂힌다.

     

    “나 먼저 간다.”

     

    예? 반문하는 서 형사를 뒤로하고 철수는 다 쓴 USB를 제자리에 올려놓고 현장을 나섰다. 그러한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복잡해보였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스럽다했다. 두고 두고 보면은 사랑스럽지 않은 이가 없을 거라고 어머니는 민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해서 늘 궁금했다. 과연 저 사람은. 저 손은. 저 다리와 머리는, 저 눈동자는.

     

    과연 어떨까?

     

    민수는 내리감긴 상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플 것 같아서 다니는 실험실에서 가져온 마취제를 좀 놓았더니 상대는 금방 기절한 듯 잠에 들었다. 그 사이 이리저리 상대의 몸을 훑어도 보았고, 손을 잘라도 보았으며, 다리를 부러뜨려도 보았다. 배를 갈라도 보았고, 등가죽을 벗겨도 보았다.

     

    민수의 고개가 갸울어진다.

     

    “재미없네…….”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흥미에 시무룩한 얼굴로 가위를 내려놓았다. 바닥에 놓여 있던 칼과 함께 저편으로 치워두고서, 민수는 바닥에 턱을 괴고 앉아 가만히 상대를 바라보았다. 감긴 그 눈두덩이가 바로 눈높이에서 보인다. 한참이 지나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자 민수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파위에 너부러진 상대에게서 잠시 관심을 거두고 근처 협탁에 두었던 공책으로 손을 뻗는다.

     

    부스럭, 인기척이 귓가에 닿았다. 민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소파 위에 곤히 감겨있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까맣게 잠긴 그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르다 민수와 마주친다. 깜빡 느리게 감겼다 떠지던 그 눈이 이내 의아함을 비추었다. 민수는 입가에 미소를 걸쳤다.

     

    “일어났구나.”

     

    의아하던 그 눈동자가 곧 당혹을 담고, 이리저리 다른 곳을 향하고, 이어서 자신의 몸을 살핀다.

     

    커다란 비명이 민수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골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음성.

     

    일기장으로 향하던 손을 거두고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가 있는 소파로 다가갔다. 겁에 질린 눈동자가 저를 담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아프지는 않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몸을 숙여 상대와 눈을 맞추었던 민수는, 빠르게 저어지는 상대의 고개에 비로소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이다. 너무 걱정하진 마.”

     

    아프면 내가 잘 묻어줄 테니까. 따듯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민수가 상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마치 동생을 대하듯 다정한 그 손길에 상대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다음은 누구로 할까. 빼곡하게 적힌 일기장을 바라보며 민수가 고민한다. 감정 없는 눈동자로 그 글씨들을 훑고 난 뒤 일기장을 덮었다. 내일 아침엔 새로운 공책을 준비해야겠다.

     

    “너였냐?”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민수는 정리하던 손을 멈춘다. 낯선 음성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민수의 귓가에 뚜벅 구둣발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 소리에 민수는 시선을 들어 상대를 마주보았다.

     

    민수와 철수의 새까만 시선이 섞여들었다. 몇 걸음 앞에서 멈춰선 철수의 눈이 민수의 발치를 향했다.

     

    “그놈, 내 건데.”

     

    강민재. 얼마 전 일어났던 여대생 살인사건 용의자. 갈기갈기 찢기다 못해 찢어발겨진 시체를 보며 철수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어느 부위인지 모를 곳에 새겨진 날짜, 2016년 1월 21일.

     

    민수는 맞부딪힌 상대, 철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서슬 퍼런 그 눈동자가 오묘하여 민수는 잠시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내 거라고? 이게?

     

    그리곤 의아한 눈으로 시선을 돌려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본다. 그 고개가 갸울어지며 민수의 입술이 열린다.

     

    “아닌데.”

     

    이상하다. 다시 고개를 든 민수의 눈동자에 씩 웃고 있는 철수의 모습이 담겼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민수는 고개를 갸웃 했다.

     

    “이거 제 장난감인데요.”

     

    마주친 민수의 표정이 진지하다. 한참을 웃고 있던 철수의 표정이 싸하게 굳었다. 동시에 저 멀리서 낯설지 않은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민수는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걸쳤다. 아. 이제 알겠다. 민수가 웃는 얼굴로 말을 뱉었다.

     

    “경찰이구나.”

     

    그래 당신, 경찰이었어. 그런데….

     

    “그건 무슨 표정이에요?”

     

    끔뻑 눈을 감았다 뜨며 민수가 묻는다. 이해할 수가 없네. 갸울어진 고개가, 그 시선이, 의문서린 그 음성이 철수의 뇌리에 맴돈다.

     

    그 순간 마주쳤던 그의 눈빛을, 철수는 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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