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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바둑왕X테니] 그 날에
당신이 사라진 그 날엔, 아주 예쁜 벚꽃이 내렸습니다.
보슬비가 내린다. 어둑한 것이 봄 날씨 같지 않았다. 겨울은 벌써 한참 지났는데 아직까지 서늘한 것은 이러한 날씨 때문일까.
사카키 타로는 본디 귀신을 믿는다든가, 보이지 않는 미지의 힘이 있다든가 하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을 그리 귀담아 듣지 않는 편이었다. 예컨대 귀에서 환청이 들리더라도 그것은 절대 귀신이 아니라, 육체가 무의식중에 캐치한 알 수 없는 자연의 소리에 불과하리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지금 내리고 있는 비라던가.
[흑흑.]
그러니까 지금 이것은, 이 소리는 날씨와 같은 여러 환경적 요인에 의해 필시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리라…….
[헝헝. 보고 싶어요, 히카루우~!]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사카키가 멈춰 섰다. 그의 고개가 돌아가고, 그의 시선이 이윽고 한 곳에 닿았다. 환청이라 생각했던 소리가 몇 번이고 들려왔던 그곳이었다. 거기엔 세상에는 존재하지 못하리만치 무척이나 새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었다. 그것이 귀신이라는 것을 알아챘음에도 사카키가 물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귀신’따위는 믿지 않아서? 글쎄. 그러한 사카키를 귀신 또한 눈치 챘는지 그 귀신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이었다. 그 눈으로 귀신은 정확히 사카키를 바라보았다.
[아…….]
어쩌면 귀신답지 않은 맑은 눈동자에 마주친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 순간 사카키를 붙잡은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 제가 보이는군요?]
그랬던 며칠 전의 일을 떠올리며 사카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히카루가 보고 싶어요. 네? 타아로오!]
물론 이렇게 귀찮은 녀석인 것을 알았다면 그딴 느낌 따위에 휘둘리지 않았을 터인데. 처음에는 몇 번 받아주다 이제는 아예 무시중인 귀신이다. 뭐, ‘후지와라노 사이’라고 했던가.
[멀지 않잖아요! 타로 당신은 자동차도 있다면서요! 그럼 더 쉽게 이동할 수 있지 않나요?]
멀다. 차라리 전철이 더 빨라. 아니, 전철로 이동하기도 싫다. 사카키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 귀신의 요구에 응할 시 자신에게 닥칠 여파가 감당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만 해도 바로 옆에서 엉엉 울어재끼는 탓에 그 감정의 쿵쿵거림이 아주 사카키의 머릿속을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고 있는데, 만에 하나라도 그 감정에 동조하여 휩쓸려 끌려 다니게 된다면……. 상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 사카키의 눈이 절로 감긴다. 자신의 것도 아니고 남의 감정에 휩쓸린다니 몇 번을 생각해도 질색이다. 컨트롤되지 않는 자기 자신은 청소년 때까지의 마인드였다. 울렁거리는 속을 애써 억누르며 사카키는 제 할일을 했다.
“아토베, 오늘따라 자세가 엉망이다. 3학년이라고 풀어지지 마라.”
아토베가 죄송합니다, 하고 사카키를 힐끔 보았다. 평소와 같은 날카로움이었으나 역시 달랐다. 전이라면 아토베가 임의로 움직여 당신을 시험한 것이란 것을 알아챘을 테다. 반응도 지금과는 달리 의문스런 표정으로, 혹은 조금 이상하단 표정으로 아토베를 쳐다보기만 하고 거기서 관뒀을 게 뻔했다. 아니, 그게 맞았다. 그런데 지금 사카키 감독은 거기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아토베가 다시 한 번 그를 보았다가 자세를 고쳤다. 궁금했던 답은 이미 나왔으니 늘어져라 잡고 있을 필요 없이 다음 할일을 하면 그뿐이다. 아토베의 자세가 다시 제자리를 찾자 사카키 또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다른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겠지만, 사실 사카키는 아까부터 계속 흰 옷자락밖에 안 보이긴 했다. 제 눈에만 보이는 것이니 아닌 척하고 있긴 하나 줄곧 제 시야를 막는 귀신 때문에 실은 무척 거슬리고 짜증이 났다. 이렇게 쉽사리 기분이 상하는 것은 아마 며칠 전부터 이 귀신이 깎아놓은 감정 탓이겠거니 했다. 이상하게도 그날 눈이 마주친 뒤로 귀신은 계속 저를 따라다녔고, 제 것이 아닌 감정에 저도 모르게 곧잘 들떴으며 그리고 지금은 내내 슬프기까지 했다. 마치 귀신의 감정이 제게 전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나 내키지 않았다. 내키지 않으면 거절할 권리가, 사카키 자신에게는 있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습니다.’
사카키가 입을 열었다. 아니, 속으로 외쳤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카키는 그에게 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 이르기라도 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거기까집니다. 후지와라노.’
그것을 들은 양 귀신은 그의 시야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사카키의 마음에 그제야 안정이 찾아왔다. 해서 이제 되었나싶은 그 찰나에, 훅하고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속에서부터 올라온다. 그와 함께 동반된 감정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슬픔’이었다. 사카키가 입술을 지르물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이루 말할 수 없이 창백해진 뒤였다.
골치가 아프다.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꾹 압박하자 끈질긴 두통 대신 압박으로 인한 통증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몇 번을 반복해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카키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주에 한 번,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히카루’를 찾는 것은 절대 제 스케줄보다 우선시되어선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말 잘 들을게요, 타로!]
꼬리라도 달렸다면 강아지처럼 팔랑팔랑 흔들렸을까. 사카키가 후지와라노를 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마치 저보다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하는 후지와라노의 말투가 묘하게 다가왔다. 물론 귀신은 귀신인지라, 겉모양새가 아무리 어려보인다한들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이상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한참을 무시하듯 있던 사카키였으나 후지와라노는 히카루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가지고 있는 이야기보따리를 모조리 털어낼 작정인지 끊임없이 쫑알대었다. 그러다 문득 신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히카루를 처음 만났을 때가 히카루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였거든요! 토라지로도 무척 어릴 때 만났고, 그러고 보니 다 큰 어른에게 붙은 것은 처음이네요? 뭔가 색다른 기분이에요. 호호~]
그러며 또 이야기를 한껏 끄집어낼 것 같더니 화제를 사카키에게 돌렸다. 여지껏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사카키가 그제야 후지와라노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타로는 몇 살이에요?]
잠시 고민하던 사카키가 입을 뗀 찰나였다.
“마…….”
[보기엔 스물…….]
사카키가 바로 대답이 없자 다시 이야기보따리를 꾸릴 준비를 하던 사이가 멈칫한다.
[네…? 네에? 마흔? 지금, 마흔이라고 했어요?]
곧 그의 표정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양 어마무시한 표정이 떠올랐다. 사카키가 입을 다물었다.
[그 얼굴로요? 네에에? 저는 스물아홉쯤 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끽해야 오가타 씨 또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에!]
오가타는 또 누구인가, 왜 자신은 ‘타로’고 그 녀석은 ‘오가타 씨’인 건지, 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을지 등을 생각해보던 사카키가 애써 후지와라노의 소란스러움을 무시하며 본래 하려던 일을 시작했다. 마흔은 이미 몇 해 전에 넘겼다는 사실을 굳이 꼬집어주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 주에 원하는 것 한 가지는, ‘히카루’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것이 맞습니까?”
[믿기지가 않… 앗, 네! 히카루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제가 없는 동안 잘 지내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바둑도 정말 두고 싶지만… 무엇보다 히카루가 걱정돼요. 제대로 작별인사를 하지 못해서 더 그렇습니다.]
후지와라노는 언제 호들갑을 떨었냐는 듯 사카키의 말에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히카루’라……. 사카키는 지금까지 들었던 후지와라노의 이야기들을 되짚어보았다. 후지와라노가 그 아이에게서 성불하기 전인 재작년 즈음까지 그 아이는 바둑을 정말 좋아했고, 프로시험도 거의 반 합격했으며, 기원에서 살다시피 했다하니 바둑협회에 알아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할 것 같았다. 그의 집 근처를 가보는 것도 좋겠고 말이다. 사카키가 홀로 생각하는 사이, 잠자코 있던 후지와라노가 슬쩍슬쩍 사카키의 상태를 살폈다.
[가능하면, 바둑도 둘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사카키의 눈이 후지와라노를 향했다. 괜스레 찔린 후지와라노가 허둥지둥 말한다.
[인터넷바둑도 괜찮아요! 하루에 한 판이면… 아니, 삼일에 한 번이라도!]
점점 꼬리 내려지는 그 모습에 사카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짜증스러운 표정이었으나, 그 입에서 나온 대답은 예상 외였다.
“시간 날 때, 딱 한 판입니다.”
어느새 푹 숙여졌던 후지와라노의 고개가 번쩍 들리고, 긍정을 뜻하는 고갯짓이 이어졌다. 잔뜩 상기된 그 후지와라노의 얼굴을 사카키는 미간을 찡그린 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기분이 나빠 보인다기보단, 마치 생소한 것을 마주한 것 마냥 미묘한 빛을 띠고 있었다.
사카키는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후지와라노는 그 ‘한 판’의 상대가 이러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엄… 타로가 바둑도 둘 줄 아실 줄이야. 저는 인터넷 바둑만 시켜줘도 됐었는데……. 타로는 음악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사카키 타로 본인이 직접 대국을 하다니. 얼떨떨한 후지와라노의 음성에 사카키가 답했다.
“어릴 때 잠시 배운 적 있습니다.”
사카키의 눈은 분명히 바둑판을 향한 채였다. 아버지가 좋아하셔서, 라는 뒷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리 영양가 있는 내용이 아니었던 때문도 있다. 후지와라노는 힐끔 사카키의 얼굴을 훑었다. 얼핏 보아도 엉성하게 배운 실력은 아니었다. 자세나, 판단능력 또한 모나지 않았다. 취미로 여전히 두고 있기라도 한 걸까? 어쩌다 한 번 두는 거라기엔 뭐할 정도로 흐름이 매끄럽다. 후지와라노가 들뜬 마음으로 다음 수를 두었다. 물론 그 돌을 놓는 것은 온전히 사카키의 몫이었다.
사카키는 기분이 조금 묘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독특한 수를 두는 상대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기도 하고, 수뿐만 아니라 방식도 저 홀로 흑백 모두 둔다는 게… 거의 몇 없는 경우이기도 했고 말이다. 자신의 연습상대는 거의 아버지였다. 아니면 자신을 가르쳐주었던 선생이나.
사카키가 말없이 수를 잇자 후지와라노가 날카롭게 끊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무척이나 아이 같은 어투의 것이었다.
[생각보다 잘 두시는데요?]
여지껏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던 사카키가 살짝 못마땅한 음성으로 그의 말을 맞받아쳤다.
“불과 서른 몇 수만에 불계승을 거둔 사람이 할 소린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하하, 그런가요. 살살할 걸 그랬나봐요. 미안해요, 타로…….]
“괜찮습니다.”
후지와라노는 뒤늦게 아차 싶은 표정으로 사카키의 표정을 살폈다. 그 말마따나 사카키는 정말 괜찮아보였다. 하긴, 그는 자신처럼 바둑에 열의를 갖는다거나 목숨을 건다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단지 바둑을 ‘알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후지와라노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사카키는 돌을 정리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럽군요.”
문득 후지와라노의 귓가에 마치 환청처럼 사카키의 음성이 박혀들었다. 후지와라노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고개를 들었다. 며칠 그의 곁에 붙어 생활했으나 단 한 번도 그러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사카키는 후지와라노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만큼은 똑똑히 전달되었다.
부럽다고 했다. 무엇이?
그가 그 뒷말을 어떻게 이으려 했는지, 후지와라노는 알 수가 없었다. 사카키에게서 간혹 넘어오던 사념마저 끊겼기 때문이었다. 후지와라노가 입을 다물었다. 묻고 싶은데, 물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히카루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히카루는 어려서 행동에도 생각에도 막힘이 없었고, 설사 망설임이 있더라도 순수했다. 그러나 사카키는 달랐다. 사카키가 마음과 함께 자신의 말을 삼켜버렸기 때문에 후지와라노는 사카키의 그 무엇도 들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후지와라노는 그의 상태에, 그리고 또 그것을 보며 느낀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 저가 어떻게 반응해야하는지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후지와라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이후의 사카키는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열정을 불태워 본 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사십이 넘는 반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자신의 삶은 그렇게 삭막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지와라노를 보고 있자면 사카키는 알 수 없는 회의감에 휩싸였다. 사실은 딱히, 그만큼 절절했던 무언가가 있어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싶다.
사카키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음악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되레 좋아한다. 몇 없는 ‘열정’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그래. 싫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타협했다’는 것이 맞을 테지. 여기저기 옅게 박힌 굳은살이 보인다.
자신은 무엇을 좋아했을까. 사카키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평소처럼 허공에 늘어진 그의 손이, 왠지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카키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때 후지와라노의 음성이 사카키의 의식을 톡하니 건드렸다.
[타로, 타로. 저 궁금한 게 있어요. 타로는 음악 선생님이죠?]
사카키는 굳이 소리 내어 답하지는 않았다. 후지와라노가 말을 잇는다. 조심스러운 음성이었다.
[그런데, 테니스 부의 고문이기도 하잖아요?]
혹여나 그의 속내를 건드리게 될까 염려하는 듯한.
[그러면 타로는 둘 중에 어느 게 더 좋은 거예요?]
그리고 그 염려는, 어쩌면 정확히도 적중한 듯했다. 후지와라노의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카키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뒤늦게야 후지와라노가 어색하게 웃으며 팔랑팔랑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순간 싸해진 공기를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아하하. 제가 이상한 걸 물어봤나요. 둘 다 좋아하니까 하는 거겠죠…? 그쵸, 타로?]
하하. 애써 굳은 얼굴을 펴며 후지와라노는 사카키의 주변을 어수선하게 돌아다녔다. 사카키가 한숨을 내쉬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글쎄요.”
별 의미 없는 사카키의 대꾸에 후지와라노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의 뒤를 따랐다.
후지와라노는 정말 착실히 약속을 지켜주는 사카키가 고마웠다. 그러나 욕심은 본디 끝이 없는 법. 사카키의 실력이 아주 몹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카키가 아닌 다른 사람과 두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들기 시작했다.
[타로, 타로는 컴퓨터 같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가 봐요?]
뻔히 속이 보이는 그 질문에 사카키가 무시로 일관했다. 괜히 마음만 더 급해진 후지와라노의 음성이 뒤를 잇는다.
[저기 ‘인터넷 바둑’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에요. 그거면 타로도 굳이 저와 두지 않아도 되고…….]
그래봤자 수를 놓아주어야 하는 것은 사카키다. 씨알도 먹히지 않을 법한 핑계였다. 사카키가 후지와라노와의 약속을 위해 바둑협회건물로 들어서며 답했다.
“저로 만족하십시오, 후지와라노. 인터넷바둑까지 시켜드릴 여유는 제게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홀로 중얼거린 꼴이었지만 말이다. 누군가 그 중얼거림을 들은 걸까. 주변 공기가 바뀌었다. 조금 전 사카키가 들어온 출입구로 막 건물을 빠져나가려던 사내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사카키를 돌아보았다. 그는 입에 물려던 담배를 도로 입가에서 떨어뜨리고 순식간에 사카키의 소매를 붙들었다.
“당신 방금 뭐라고… 아니. 지금 ‘후지와라노’라고 했습니까?”
그 음성은 무척이나 급박해 보였다. 사카키가 사내를 돌아보았다. 사내가 쓴 안경 너머, 사카키가 마주한 그의 눈매는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마치 무언가를 절실히 찾는 자의 것처럼. 사카키는 침묵했다. 사내는 한참이나 사카키를 붙잡고 있다가 뒤늦게 그 손을 놓았다. 그러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실례했군요.”
“아닙니다.”
[앗, 오가타 씨! 여기서 뵙네요! 호호호! 반가워요, 이게 얼마만이에요? 오가타 씨~!]
영혼 없는 사과였지만. 그에 답하며 사카키가 자신의 옷깃을 바라보았다. 덥석 잡혀 놀란 소매가 보인다. 그런 사카키의 귓가에 사내 주변을 서성이며 오두방정을 떠는 후지와라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 ‘오가타 씨’가 이 사람이었나. 사카키가 다시 사내를 보자 사내, 오가타는 묘한 음성으로 물었다.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여긴 무슨 일로.”
처음 보는 사카키에게 마치 특별한 용건이라도 있어 뜸을 들이는 것 마냥 말이다. 사카키는 굳이 숨기지 않고 순순히 답해주었다.
“찾는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혹시 이곳을 잘 아십니까?”
오가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 찾는다는 사람이… 혹시 ‘신도우’입니까.”
신도우? 처음 듣는 이름에 사카키가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휘었다. 후지와라노가 서둘러 사카키에게 말했다.
[맞아요, 타로. 신도우. 신도우는 히카루의 성씨입니다!]
신도우, 히카루. 그렇군. 사카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가타의 입가에 씩 미소가 걸렸다. 이번에 사카키가 마주한 오가타의 눈빛은 마치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것 같은 눈빛이었다.
“히카루와 아는 사입니까?”
“아니요, 전 아닙니다.”
그럼 누구와 아는 사이란 뜻인가? 오가타는 더 캐묻고 싶은 것처럼 보였으나 그 전에 사카키에 의해 저지당했다.
“혹시 지금 그를 여기서 만날 수 있을까요.”
먼저 선수를 쳐버린 사카키의 물음에 오가타가 고개를 저었다.
“히카루는 지금 개인적인 일로 한국에 가 있어서 당분간은 보기 힘들 겁니다.”
“음. 그럼, 괜찮으시다면 ‘신도우 히카루’에 대해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기회야 언제든 만들 수 있겠지만 말이다. 오가타는 웃으며 흔쾌히 답했다.
“그러죠. 이거… 히카루가 좋아하겠군요.”
그러며 그는 이야기할 장소를 찾아 자리를 옮겼다. 원하는 만큼 캐묻진 못했으나 오가타 스스로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답을 찾은 모양새였다. 사카키는 기뻐하는 후지와라노를 대신하여 오가타에게 감사를 전하며 그를 따랐다.
‘히카루를 만나면 뭐라고 할 겁니까? 후지와라노.’
[앗. 그러고 보니 그 생각 안 했네요! 히카루를 만날 생각에 그저 좋아서…!]
걸음을 옮기며 사카키가 물었다. 후지와라노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했다.
[히카루를 만나면 가장 먼저 그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보고 싶어요! 또 아키라와는 잘 지내는지, 그의 실력은 또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리곤 또다시 이야기보따리를 한껏 늘어놓기 시작한다. 사카키가 괜히 물었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후지와라노의 입은 쉴 새 없이 한참을 움직였다.
오가타 세이지, 그날 만난 그 사내에게서 얻어낸 정보는 크게 두 가지였다. ‘후지와라노 사이’가 신도우 히카루에게서 사라진 뒤로 정확히 3년여 정도가 흘렀다는 것과 그간 신도우 히카루는 후지와라노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성장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 간 것도 바둑을 좀 더 배우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아마 돌아오면 들은 것보다 한층 더 성장해있을 지도 몰랐다. 후지와라노는 그 정보를 접하고 생각보다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히카루는 저를 보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히카루를 보고 싶다고 제게 그렇게 졸랐지 않느냐고 사카키는 묻고 싶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제 느낌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아! 어차피 저도 이제 미련은 딱히 없지만요!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타로는.]
답은 묻지 않아도 후지와라노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바둑에 미련을 버린 제가 왜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후지와라노를 사카키는 게슴츠레 훑었다. 후지와라노 그가 ‘히카루’에게 얼마나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지 그 자신만 모르는 듯했다.
[그러니까 타로. 히카루는 절 못 보겠지만 그래도 저라도 히카루를 본다면 속이 좀 편할 것 같습니다! 부탁해요, 타로! 히카루를 만나게 해주세요!]
후지와라노가 푹 고개를 숙였다. 사카키는 내키진 않았지만, 거절하지도 않았다.
“알겠습니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사카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 거 신도우 히카루 그가 다시 일본에 귀국할 때에 맞춰 한 번 찾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어렵진 않으니 해주자, 고 사카키는 마음먹었다. 후지와라노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오가타 세이지는 사카키의 연락처를 받았다. 종종 연락을 하기 위해서 그러했고, 실제로 그러고 있기도 하다. 히카루에 대한 정보를 얻어다 주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이따금씩 ‘후지와라노 사이’에 대해 물었다. 시간이 흘러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졌으나, 다시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뛰었던 심장의 느낌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사이(Sai)’에 대한 갈망이 오가타에겐 아직도 한껏 남아있는 상태였다.
히카루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자세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단지 그는 어떠한 사람인지, 그의 바둑이 어떤 것인지 보고 들은 것이 다였다. 그래서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조금 더 그 진실에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사카키에게 말했다.
혹 당신에게 히카루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와 대국할 수 있게 해주겠느냐.
예의 히카루를 봐왔기 때문에 그에 대해 무작정 따지고 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가타는 알고 있었고, 해서 사카키에게 천천히 시간을 두어 말했다. 그 덕분에 사카키는 과연 그가 ‘후지와라노에 대한 사실들’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긴가민가해 하면서도 결국 그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곁에 있던 후지와라노가 그와 두고 싶다며 사카키를 들들 볶았던 탓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그 덕에 사카키는 자신의 시간을 더욱 쪼개어 후지와라노의 대국을 대신 두어주었고, 그의 대국상대는 이제 오가타가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오가타와는 종종 전화통화뿐 아니라 직접 만나기도 하고 그때마다 더 양질의 정보들을 얻었다. ‘히카루가 이번엔 중국을 갔다는 둥, 또 다른 어디를 갔다는 둥’하는 비교적 정확하고 세세한 정보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히카루가 보인 활약상이라던가, 혹은 그간 그가 선보인 대국의 일지라던가…….
아마 오가타가 후지와라노에게 베푼 도움들을 시각적 형태로 모아보면 웬만한 대국실하나를 아주 꽉 채우고도 남을지 모른다. 후지와라노는 오가타가 건네는 정보들을 정말 빠짐없이 경청했고, 또 보았다.
[이걸… 히카루가 뒀다고요?]
히카루의 행적을 보며 ‘말도 안 된다’고 몇 번이고 중얼거리고, 무언가에 시무룩해하고, 아쉬워하던 처음의 사이가 곧 놀라움과 기쁨을 보였다.
[이것 좀 보세요, 타로! 맞아요! 어쩌면 제가 기대했던 히카루의 한 수는 이거였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제 자식 이야기를 하듯이 펄쩍펄쩍 뛰면서. 그러나 후지와라노의 일을 알아보느라 시간을 쪼개야 했던 사카키는 덕분에 무척 바빠졌다. 그래서 평소엔 산처럼 쌓인 일들을 서둘러 처리하고, 후에 또 쌓일 일들을 어느 정도 미리 해놓아야만 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즉, 후지와라노를 봐줄 때가 아니면 사카키는 숨도 돌리지 못했다는 소리다.
그런 사카키의 주변을 후지와라노가 방방 뛰며 돌아다니고, 또한 사카키는 그런 그를 위해 그 순간만큼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일을 다 끝내지 못할 정도로 저 자신의 일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사카키는 그 당시 후지와라노의 모든 행동에 그렇게 했다.
[속이 후련하네요. 저는 어쩌면 이 한 수를 보고 싶어 미련이 남았던 것일지도요.]
후지와라노가 중얼거렸다. 사카키가 그것을 한 귀로 흘렸다. 잠잠해진 후지와라노를 뒤로한 채 사카키의 손이 더욱 바빠진다. 얼마 전 오가타가 알려준 ‘히카루의 귀국일’이 당장 며칠 뒤였으므로 서둘러야했다.
오가타를 처음 만난 그날 이후로부터 히카루가 돌아오기까지 무려 삼 개월이나 흘렀다. 후지와라노를 처음 만난 것이 간간이 봄비가 내릴 무렵이었으니 벌써 반년이 흐른 셈이었다. 어느새 바깥 골목골목에는 떨어진 낙엽들로 바닥이 온통 흐드러지게 물들었다.
맨 처음 후지와라노가 말했던 ‘히카루’란 인물을 알아보기 위해 사카키가 신도우 히카루의 집 근처를 찾아갔을 때에도, 그리고 신도우 히카루가 자주 갔던 기원이나 여러 장소들을 뒤져보았을 때에도… 그를 코빼기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역시 그가 그 한참 전부터 일본에 없었던 탓이었던 듯싶다. 하긴 오가타마저도 히카루가 ‘아마 장기간 한국에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었으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고 했었으니 어쩌면 생각보다 일찍 만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사카키는 신문에 한껏 집중한 후지와라노를 보았다. 후지와라노의 시선이 고정된 곳엔 히카루에 대한 글과 사진이 가득했다.
“‘히카루가 협회에 도착했다’고 하는군요.”
오가타에게서 금방 받은 문자를 후지와라노에게 읊어주며 사카키는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사카키는 자신이 운을 떼면 격한 반응을 일으키리라했던 예상과는 달리 잠잠한 후지와라노의 반응에 다시 한 번 입을 뗐다.
“지금 가시겠습니까?”
사카키가 다시 한 번 운을 떼자 후지와라노는 그제야 신문에서 눈길을 돌려 사카키를 보았다.
[…네, 타로. 가요. 이제 됐습니다.]
후지와라노는 뒷말을 속으로 삼켰다. 지그시 감았다가 뜬 눈동자엔 더 이상 그 어느 ‘갈망’도 없었다.
바둑협회건물에 도착하여 한 인물을 보았을 때. 사카키는 바로 알아챘다. 저 청년이 ‘신도우 히카루’구나. 웃는 미소가 개구진 소년과도 같은 그 청년은, 앞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채 오가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사카키를 뒤로한 채 오가타가 그 청년을 향해 다가갔다. 청년, 히카루는 오가타를 보며 말했다.
“오가타 명인! 잘 지내셨어요? 그새 늙으신 것 같은데요?”
그리곤 장난 같지도 않은 말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다. 사카키는 힐끔 오가타를 보았다. 오가타가 코웃음을 치며 히카루를 흘겼다.
“그래. 오랜만이군. 넌 그새 더 싸가지가 없어졌군그래.”
“그런가요? 하하.”
“칭찬 아니다, 신도우 히카루.”
많이 친한 건가? 사카키가 애매함에 눈썹을 찡그렸다. 오가타의 반응과, 그런 그에 킬킬대며 웃어재끼는 히카루의 반응이 무척 상반되었다. 때마침 히카루의 눈길이 사카키를 향했다. 히카루의 입가에 걸려있던 웃음기가, 못마땅했던 오가타의 표정이 동시에 사라졌다. 줄곧 조용하던 후지와라노에게서 기척이 느껴졌다.
[히카루.]
후지와라노는 히카루의 바로 코앞에 서 있었다.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만약 히카루가 알았다면 히카루는 당장 후지와라노의 손을 붙잡았을 테다. 후지와라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사카키의 예상과는 달리 슬퍼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걸음이 히카루의 앞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뿐. 후지와라노의 손이 히카루가 있는 곳을 훑었다. 히카루의 입이 열렸다.
“누구세요? 이 분은.”
히카루에게, 그는 닿지 않았다.
[이제, 정말 되었습니다.]
사카키가 잠시 후지와라노를 보았다. 비록 히카루가 그를 직접 본 것은 아니고 그저 후지와라노 홀로 히카루를 대면하였을 뿐이나 후지와라노는 후련해보였다. 지그시 저를 보는 사카키의 시선에 후지와라노가 당황한 얼굴로 뒷걸음질 친다.
[왜… 왜 그렇게 보세요?]
갑작스런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지 후지와라노는 말도 더듬었다. 사카키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부채를 그렇게 넘겨줘도 됩니까.”
[아. 그거요?]
사카키는 괜히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만날 적부터 항상 쥐고 있던 그의 부채 얘기였다. 히카루라는 청년과 후지와라노가 마주했던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카키의 물음에 후지와라노가 홍홍 웃었다. 부채 없는 손이 어색한지 손등으로 입을 가린 채였다.
[먼 훗날 그 부채를 들고 명인이 되어 있을 히카루를 행각하니 뿌듯한걸요!]
“그렇습니까.”
[네! 타로 덕분입니다.]
장난과 같은 말에 사카키가 후지와라노가 기분 좋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슬슬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네요.]
그리곤 속삭였다. 아니, ‘속삭였다’고 느꼈다. 갑자기 그 음성이 아득해졌기 때문이다. 사카키가 멈칫하고 돌아보았다. 뜬금없는 말이다. 갑자기 무슨? 돌아본 사카키의 곁에 후지와라노는 여전히 있었다. 지난 시간 항상, 줄곧 있던 그 자신의 옆에…….
[고마웠어요, 타로. 그동안 귀찮게 굴어서 미안해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흐릿한 상태로. 사카키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당연스럽게도 그 손은 허공을 갈랐다.
[타로. 다음에 또 봐요.]
잠깐. 사카키는 숨을 들이켰다. 뭐라고 말이라도 뱉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카키는 알면서도 묻고 싶어졌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말이에요. 호호, 하고 명랑하게 웃는 후지와라노의 음성이 사카키의 손가락 사이로 흩어진다. 그의 음성은 이제 들리지 않았다. 사카키의 눈이 텅 빈 허공에 멈추었다.
지난 반년 동안의 모든 것이 환상이었단 듯이.
늦가을의 벚꽃이 만개한 그날, 후지와라노 사이는 사카키 타로에게서 사라졌다.
그거 아십니까? 후지와라노.
이제 와 말씀드리지만은
당신이 사라진 시월의 그날은 이상하게도
아주 예쁜 벚꽃이 내렸습니다.
- 사카키 타로가 후지와라노에게 보내는 편지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