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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건8 (윌라드, 샬럿, 드렉슬러)
    사이퍼즈 2014. 8. 31. 16:02

    [사이퍼즈]

     출연 : 윌라드 크루그먼, 샬럿, 다리오 드렉슬러.

     조건 : 요즘 흥한 꽃병 컨셉. 드렉슬러를 마음에 둔 윌라드.



     거친 기침이 윌라드의 입을 통해 토해진다. 무언가 목에 한가득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차례에 걸친 그 기침은 곧 역한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한참이 지나자 어찔했던 정신이 돌아온다. 숨을 천천히 가다듬고서, 윌라드는 제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어 바라보았다.

     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저가 토해낸 것이 바로 ‘꽃’이라고. 그러니까 자신이 그렇게 계속해서 기침을 하며, 결국 토해낸 그것이 지금 제 손에 담긴 이 ‘꽃’이라고. 제 손에 다 담지도 못할 만큼 한 움큼 쥐이다 못해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꽃.

     마치 ‘그 사람’을 닮은.

     윌라드는 팟하고 주먹을 쥐었다. 쥐고 있던 꽃잎이 허공에 흩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꽃잎을 바라보며 윌라드가 돌아선다. 저 스스로 말하지도 움직이도 못하는, 미천한 꽃 따위를. 바스락 바닥에 널브러진 꽃잎이 윌라드의 구둣발에 짓밟혔다.

     멀어져가는 구두소리, 바닥에 남겨진 꽃잎들. 샬럿이 조심스럽게 그 자리로 다가갔다. 조금 전 윌라드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오늘도 윌라드 아저씨한테 마를렌 언니와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으며 자랑하려했는데. 신나있던 샬럿의 마음이 바닥에 흐드러진 꽃잎들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슬퍼진다. 샬럿이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혔다. 꽃잎들을 밟지 않게 조심하며 하나하나 제 옷가지에 담아 모았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이 남김없이 제 옷가지에 담긴 것을 확인하고 샬럿은 해맑게 웃으며 자리를 옮겼다.


     편지. 윌라드는 제 책상 위에 놓인 이질적인 그것을 집어 들었다. 겉봉투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왠지 서툰 편지봉투포장이 샬럿을 떠올리게 했다.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던 윌라드가 조심스레 봉투를 뜯어, 편지지를 꺼냈다.

     그러자마자 함께 내비친 것은 그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윌라드 아저씨. 힘내세요!’

     채 접착력을 이기지 못하고 후두둑 떨어지는 꽃잎과, 꽃잎이 붙어있던 편지지에 함께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 그리고 그녀가 직접 그린 듯한 엉성한 그림. 윌라드의 입가에 설핏 웃음이 머물렀다. 잠시 멈춘 듯싶던 윌라드의 손이 떨어진 꽃잎과 함께 편지지를 다시 봉투에 넣어 챙겼다.


     “윌라드 아저씨!”

     환한 미소와 함께 달려오는 어린 소녀를 보았다. 윌라드는 그녀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샬럿 양.”

     “이것 좀 보세요! 마를렌 언니랑 같이 만들었어요!”

     상기된 얼굴로 윌라드의 옷깃을 끌어당기며 샬럿은 제 손에 든 것을 흔들어보였다. 윌라드는 꼬마 아가씨와 눈을 맞추기 위해 그 곁에 주저앉아 높이를 맞추었다.

     “예쁘군요.”

     칭찬을 바라는 듯 저를 향한 샬럿의 맑은 눈동자를 이기지 못한 양 윌라드가 샬럿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샬럿은 손에 쥔 종이학 두 개를 보고, 윌라드를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하나를 윌라드에게 내밀었다.

     “윌라드 아저씨 하나 드릴게요.”

     샬럿은 두 개니까 하나쯤은 윌라드에게 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했던 일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큰 칭찬을 받았다. 돌연 샬럿을 바라보던 윌라드가 꼭 그녀를 끌어안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 것이다.

     “고맙습니다. 잘 간직하겠습니다, 샬럿 양.”

     샬럿은 지금껏 받았던 그 어떤 칭찬보다 기분이 좋아 덩달아 그를 끌어안고 배시시 웃었다.

     그 때였다.

     욱, 하고 크게 윌라드의 몸이 들썩였다. 샬럿이 깜짝 놀라 윌라드를 바라보는데 그녀의 머리맡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오, 샬럿!”

     드렉슬러 아저씨였다. 제 쪽으로 다가오며 손을 흔드는 드렉슬러를 보며 샬럿이 환하게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자연히 윌라드의 품에서 빠져나와 드렉슬러에게 다가간 샬럿은 뒤늦게 멈칫하고 윌라드를 돌아보았다.

     “마를렌은 어디 두고 혼자 있어?”

     “아, 언니는 잠깐…….”

     다시 들려온 드렉슬러의 음성에 다시 윌라드를 살펴본다는 샬럿의 생각은 그저 생각에 그치고야 말았지만 말이다. 드렉슬러의 물음에 그를 보며 답하다 슬쩍 뒤를 향하는 그의 눈동자에 멈칫했다. 그쪽엔 윌라드 아저씨가 있는 곳이었다.

     “크루그먼?”

     그 목소리가 우왕좌왕하던 샬럿의 정신을 퍼뜩 깨어나게 했다. 휙하니 샬럿의 고개가 돌아간다. 주저앉아있던 윌라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을 타고 후두둑 새까만 무언가가 떨어져내렸다. 왜인지 그 손엔 찌릿찌릿한 전기가 감돌고 있었다. 드렉슬러가 당황한 얼굴로 그 손을 가리켰다.

     “뭐야. 그거…….”

     “미안합니다, 샬럿 양.”

     윌라드가 입을 연다. 그러며 아직도 전기가 흐르는 그 손을 들어 그녀에게 내보였다.

     “그만 다 태워버리고 말았군요.”

     덤덤한 그 음성에 상황을 판단하지 못한 드렉슬러가 샬럿을 보았고, 윌라드의 손를 본 샬럿이 이내 울상을 짓는 것까지 목격했다. 그의 손 위에 남은 새카만 재. 그러니까 분명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 멀리서부터 지켜보고 있을 때에 샬럿은 그녀의 손에 있던 무언가 중에 하나를 윌라드에게 주었다. 드렉슬러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러니까 윌라드는 지금 그것을, 태웠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샬럿이 제 손에 남은 한 마리의 종이학을 쥐고 울음을 터트렸다. 드렉슬러의 얼굴이 완전히 구겨지고 벼락같은 화가 그의 입 밖을 터져 나왔다.

     “크루그먼, 자네…!”

     차가운 눈동자가 드렉슬러를 향했다. 멈칫 그의 몸이 굳었다. 그는 멀어져가는 윌라드를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샬럿이 울었다. 바닥에 남은 새카만 잔재를 보며, 무엇이 서러운지 펑펑 울었다. 드렉슬러가 샬럿을 토닥이며 이를 갈았다. 망할 이사 놈. 냉정한 새키. 그러다 문뜩, 그의 눈길이 바닥을 향했다. 갸웃 그 고개가 기울어진다.

     샬럿이 쥐고 있는 작은 학에 비해, 바닥에 버려진 재의 양이 터무니없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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