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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건13 (윌라드, 드렉슬러)
    사이퍼즈 2015. 4. 17. 04:06

    [사이퍼즈]

     출연 : 윌라드 크루그먼, 다리오 드렉슬러.

     조건 : 드렉슬러의 고백.


     ‘그’는 누군가와 얽힐 인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윌라드는 ‘그’를 선택했다. 윌라드 자신은 명왕과의 거래로 인해 명령과 조건에 묶인 사람이다. 더불어, 그 거래로 얻어낸 자신의 모든 것을 위하여 윌라드는 모든 인연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 판단했다. 그래서 그리 했고, 단 몇몇의 예외를 두었다.

     그러니까 그 예외에 ‘그’가 속했다는 말이다. 물론 예외 된 그룹에 ‘그’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윌라드는 제게 먼저 뻗어오는 아이들의 손길만큼은 뿌리칠 수 없었기에 자연히 그러한 아이들 또한 해당 그룹에 포함되었고, 적당한 관계로써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 사료된 소수의 ‘안전 인물’ 몇 또한 포함된 적이 있었다.

     포함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제외되었다는 말이다. 단 하나, ‘그’를 빼고는.

     한 번의 회식이 있었고, 우연찮은 기회에 그와 단둘이 한 잔 더 하게 되었다. 윌라드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는, 그가 지키는 관계의 선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또 한잔 어떻습니까?”

     게다가 그 당사자가 남과 깊이 얽히길 죽어도 싫어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천재 ‘다리오 드렉슬러’라면야 두말할 것도 없다, 고 생각했다. 그때야 비로소 윌라드는 적당한 관계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대여섯 번쯤 만났을 때였다. 윌라드가 되묻자 그가 말했다.

     “크루그먼 자네가. 좋은 것 같다고.”

     윌라드가 이렇다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그’를 보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의 푸른 눈동자가 윌라드를 직시한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윌라드를 향했던 드렉슬러의 푸른 눈동자가 머뭇머뭇 다른 곳을 향했다. 윌라드는 그제서야 다물지 못한 입을 여몄다. 그래, 잘못 듣지 않았다.

     ‘크루그먼. 난 자네가 좋아. 그러니 내게 이름을 허락해주지 않겠나?’

     분명 그렇게 말했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충격 탓에 윌라드가 가만히 있자 ‘그’ 쪽에서 먼저 입을 뗐다.

     “무슨 생각인지 알고 있어. 그치만 좋은 걸 숨길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만. 그만하십시요.”

     윌라드가 미간을 찡그린 채 손을 들었다. 말하던 것이 강제로 저지된 그가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그 표정이 시무룩한 것은 그가 한 말이 진실이기 때문일까. 윌라드는 짜증스럽게 눈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모처럼 즐거운 기분이 혼란스러워지는 기분이란, 무척 싱숭생숭했다.

     “적당히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참을 잠자코 있던 윌라드가 겨우 입을 떼고서 한 말이었다. 드렉슬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듯싶었다. 윌라드는 남은 잔을 천천히 들이켰다. 탁, 하고 잔 놓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온다. 윌라드가 옆을 돌아보았다. 거의 한가득 들어차 있던 맥주는 눈 깜짝할 새 바닥이 나 있었다. 윌라드의 시선이 저를 향한 것을 아는지 드렉슬러가 보란 듯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마시던 잔을 놓고 윌라드가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 삐진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잖습니까…….

     심술과도 같은 불쾌감이 윌라드의 가슴을 훑었다. 윌라드는 속이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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