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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룡이 나르샤] 귀신
    기타 2016. 1. 20. 20:43

    [육룡이 나르샤] 귀신

     

     

     어릴때 태미에게 특이한 병이 있었다. 그것이 어떤 병이냐하면, 해가 저물고 달이 뜨면 '태미'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태미의 탈을 쓰고서 눈을 뜨는 것. 일명 몽유병과 같은 증세이긴 하나, 그 무언가의 성깔이 워낙 사나워 함께 지내는 선미가 항상 고생을 했다.


     말도 제대로 들어먹지 않고 사납고 괴팍한 성격 탓에 선미는 그것이 분명 아주 고약한 귀일 것이라 여겼다.

     아비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무당에게도 데려가 보고, 부적도 써 보았더랬다. 허나 효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힘으로 태미를 제어하는 것뿐. 어느날은 그 몽유병 때문에 선미와 태미의 귀가 크게 싸워 선미가 크게 다치는 일이 생겼다.

     태미 또한 몸이 성하게 끝나지는 않았지만 태미를 붙들고 있던 선미의 손자국 등 시퍼런 멍을 제외하고는 흉이 질만한 상처는 없었다. 다만 선미는 이리저리 몸부림치는 태미의 손톱에 긁혀 얼굴이며 팔 몸 등 이곳저곳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유독 심한 것은 눈두덩 뒤 눈썹을 가르지르는 상처. 아비가 낮에 손질하려 잠깐 들여놓았던 칼로 선미의 눈가를 북 그어버린 것이다.

     다음날 아침 정신이 든 태미가 그것을 보고는 삼일 밤낮을 엉엉 울었더랬다. 그 후로도 종종 저 탓에 잠을 못 자 수척한 선미의 얼굴을 볼 때면, 그리고 진하게 흉져버린 눈썹의 상처를 볼 때면 미안한 표정을 짓던 태미가 떠오른다.

     선미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가만히 술잔을 내려다보았다.

     -또 날 생각이냐.-

     "...시끄럽군."

     이제는 저에게 붙어버린 귀의 음성을 무시한 채 선미는 새하얀 달이 적셔진 술잔을 천천히 들이켰다.

     그 옛날.

     '차라리 이 놈이 죽고 그 귀놈이 남았다면 좋았을 터인데.'

     시리게 들려오던 아비의 음성이 기억을 스친다. 허망하게 주저앉던 동생도, 그리고.... 선미는 한숨을 쉬며 다시 잔을 채웠다.

     -왜. 죽였잖아? 네 손으로.-

     "그 생각하는 것 아니다."

     매일 같이 들려오는 이 악귀의 속삭임을, 아우는 어찌 참았을까. 선미는 웅웅대는 음성을 무시한 채 아닌 척 술을 들이켰다.

     -네 생각내가 모를 줄 알아?-

     그런 선미 앞에 새카만 무언가가 드리워진다. 기울이던 잔을 내려놓고 선미는 고개를 들었다. 눌러쓴 갓 너머로 익숙한 인영이 보인다.

     -모를 수가 없지. 안 그래?-

     저와 같은 발걸음, 저와 같은 몸, 그리고 쌍생인 아우보다도 더 닮은 얼굴. 마주친 가만 눈동자에 선미가 차가운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네 자신이니까.-

     훅하니 풍겨오는 현기증에 선미가 꽉 술잔을 붙잡고 미간을 찡그렸다. 그 어렸던 아우는, 대체 어찌 저 홀로 이 무시무시한 귀를 견디어냈을까. 선미는 이를 악문 채 질끈 두 눈을 감았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곤히 잠에 들던 태미의 얼굴이 앞을 스친다. 제 손으로 아비를 죽였던 그날 밤이 떠오르고, 처음으로 아침에 눈을 떠 환히 웃던 아우의 얼굴과, 저를 보며 경악하였던 얼굴. 그리고....

     '길선미, 이 후레자식.'

     선미가 까득 이를 갈았다. 손에 쥐인 잔이 콰직 깨지며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곧 동이 틀 거다. 이제사 나온다 해도 네게 득은 없을 텐데."

     잘게 떨리는 음성을 녀석이 알아챌까 선미는 마른 침을 삼켜 메마른 목을 축인다. 훅하니, 그제야 검은 기운이 물러간다.

     선미는 어찔하며 돌아오는 정신에 작게 숨을 골랐다. 오늘도 다행히. 무사히 버텨내었다. 선미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찾아든다. 비어버린 손을 털고서 선미는 아쉬운 눈으로 술병을 보았다.

     그날 그때에 길을 잃은 귀가 다시 들러붙은 것이 아우가 아닌 제 몸이라 다행이라고 선미는 문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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