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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루토X마비노기
    기타 2015. 3. 9. 18:46

     [나루토X마비노기] 휴면계정 : 그 마을의 수호령


     나뭇잎 마을에는 전설로 내려오는 노랫말이 있다. 옛날엔 이야기였을 노랫말이다. 지금은 많이 왜곡되고 퇴색된 이야기지만 그 전설은 아직 건재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한 조각상 탓이었다. 마치 그 전설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마을 한 켠에 자리한 조각상하나가 몇 세기인지 모를 세월동안 줄곧 나뭇잎 마을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듣기로는 현재 꽤 나이를 먹은 3대 호카게조차 ‘그는 나뭇잎 마을이 세워지기도 전부터 이곳을 굽어 살피고 있던 신령님이다’라고 전대와 전전대 호카게에게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뭇잎 마을 뒤편에 자리한 자그마한 동굴 속, 작은 소년의 형상을 한 그 신비한 돌조각은 요즘 아이들에겐 거의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 속 존재란 말이었다.

     그곳엔 종종 많은 사람들이 와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타인에겐 섣불리 내뱉지 못하는 마음속 한을 풀어내기도 하고, 그 외의 이러저러한 용도로 쓰기도 하고, 이루 말하자면 아주 오랜 세월동안 그곳은 나뭇잎 마을의 좋은 안식처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 조각상… 아니, 그 소년이 섣달 그믐날마다 마을 거리거리마다 나타난다고 믿었다. 해가 지고,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그 소년이 깨어나 마을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눈을 감아 그를 보지 마오]

     그 날이면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고, 각자의 마음을 담아 그를 향해 기도했다.

     [귀를 닫아 듣지 마오]

     그러면 그 소년은 그들이 잠에 든 사이 거리거리마다 사람들이 흩어놓은 바람들을 담는다.

     [다만 그를 놓아 주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동굴로 돌아가 새로 맞이한 한 해 동안 그들의 소망을 굽어 살펴준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에 걸맞게 실제로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거리를 나가면 종종 그 소년과 닮은 형상의 무언가가 보인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진실일지, 거짓일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소년은 훌륭한 음악가였다. 일명 떠돌며 연주하는 ‘음유시인’, 그것이 바로 소년의 직업이었다. 물론 가난하여 조잡한 소리가 나는 류트만을 들고 반평생을 돌아다니다가 얼마 전에야 겨우 만돌린하나를 장만하였을 뿐이지만. 소년에게는 그 악기가 전 재산이었다.

     소년은 태어났을 적부터 말을 하지 못했고, 다른 밀레시안과 달리 싸움 같은 것은 선천적으로 둔했다. 소년 또한 밀레시안인지라 전혀 못한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달리 꺼려했다. ‘퀘스트’로 어쩔 수 없이 사냥 임무를 받았을 적에도 소년은 목적지에 가기까지 한참이 걸렸으며 그 이유엔 항상 ‘음악’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겨우 목적지에 다다라 사냥을 한 뒤에도 그는 오롯이 연주뿐이었다. 연주를 하며 소년은 모든 것에 위안을 삼았다.

     정확히는 그것을 들어주는 ‘에린’에 위안을 삼았다.

     유난히 둔하고 약한 소년의 곁에는 항상 동료들이 따랐고, 그 동료들은 약한 소년을 대신하여 소년 몫의 사냥을 분담했다. 소년이 죽지 않도록 열심히 보조해주고 앞서 나아가 먼저 몹들을 처치해주기도 했다.

     그에 감사하여, 그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은 언제나 소년의 몫이었다.

     근처의 장작들을 모아 물을 지피고, 사냥에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누군가가 요리를 시작하면, 그때부턴 소년의 차례였다.

     소년은 노래했다. 말을 할 수 없으므로, 직접 소리를 낼 수 없으므로, 손에 든 악기를 켜고 짊어진 악보더미를 풀어헤쳐 그들이 가장 좋아할 노래를 연주했다. 사냥 탓에 지쳐있던 심신을 동료들은 소년의 연주로 풀었다. 퀘스트 내내 굳어 있고 일그러져 있던 동료들의 얼굴에 하나둘씩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며 소년은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린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새로운 땅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이제 배를 타고 정해진 항로를 따라 흘러가면,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신비한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동료들은 신이 나 보였다. 소년은 두 눈을 깜빡이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 가면 신비한 종족들도 많다고, 어쩌면 지금보다 더 멋진 전투를 벌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소년을 제외한 동료 전부가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로운 마법이 등장하고, 새로운 검술과, 그 외의 전투방법이 등장했다.

     소년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단 하나 알아낸 것이 있었다. 동료들은 자신과는 달리 전투를 좋아했다. 여신이 보내주는 ‘퀘스트’를 반겼고, 새로운 변화를 줄곧 기다렸다. 더 강해지길 원했고 무료한 일상에 좀 더 강한 자극이 닥치기를 원했다.

     그 ‘새로운 대륙’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료들을 뒤로한 채 소년은 자리를 옮겼다. 더 이상 그들의 곁에, 자신은 있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변했다. 에린엔 하나가 아닌 대륙들이 생겨났고, 전에 없이 강한 자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들리는 소문에 예전 동료였던 이도 그들 중에 몇몇 껴있는 것 같았지만 소년에겐 별나라의 이야기였다.

     소년은 예전처럼 악기를 연주했다. 그들과 헤어지기 직전에 샀던 만돌린은 이미 낡을 대로 낡아 제 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년은 줄을 튕겼다. 노래할 수 없는 소년은 악기로 말했다. 그립다고.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자신은 서슴없이 그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고.

     티르코네일. 먼 옛날 수많은 밀레시안들이 존재했던 그 광장은 이제 더 이상 그 누구의 걸음도 찾아볼 수 없다. 소년은 지펴놓은 모닥불이 서서히 불씨를 잃는 것을 보며 눈을 감았다.

     이제 그의 연주는 아무도 듣지 않게 되었고, 그의 마음은 더 이상 동료들에게 닿지 않았다.



     소년이 눈을 감고 얼마가 흘렀을까. 간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더 싸우기 싫어요. 이제 그만 하고 싶다고요.”

     그것은 푸념에 가까웠다.

     “그 녀석,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옛날엔 사이도 좋았는데…….”

     그 목소리는 무척 지쳐보였고.

     “더 강해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옛날 무언가와 무척이나 닮은 것 같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래. 그 옛날 나누었던 동료들과 자신의 이야기 같다고 느꼈다.

     “신령님. 저도 강해질 겁니다.”

     그 목소리는 싸우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강해지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 그 녀석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년의 동료들과, 같지만 달랐다. 소년은 처음으로 눈을 떴다. 그 자리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소년은 갑자기 다시 연주를 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더 이상 악기는 없었다. 다시 소년의 눈이 감긴다. 적막이 찾아온 그곳에, 다시 발길이 이어지기까지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긴가, 스승님이 말씀하셨던 곳이.”

     소년은 또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음성은 꽤 오랜 기간 들려왔다.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오랫동안 뜨문뜨문 이어졌다는 것이다. 앳되었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성숙해졌고 힘이 깃들었다. 소년은 그 옛날 찾아왔던 목소리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좀 더 활발한 음색으로 말했다.

     “스승님은 여기서 무엇을 빌고 가셨습니까? 저도 여기서 소원 하나쯤 빌면, 들어주시렵니까? 아니. 그보다 얼마 전에 말입니다, 신령님!”

     쫑알쫑알 어떨 때는 너무 떠들어서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듣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정신이 들 때쯤이면 찾아와 그 음성은 소년을 또 다시 정신없게 했다. 소년은 그 음성에 차차 적응이 되었고 저도 모르게 그 아이가 오기만을 꼬박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익숙한 인기척이 들렸다. 소년은 의아했다. 매번 오자마자 쫑알대던 그 발걸음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신령님. 저는, 어떡해야…….”

     한참을 가만히 있던 그 음성이 들려온다. 여느 때와는 다른 감정이 그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그것은, 소년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그 음성은 더 이상 소년을 찾지 않았다.

     소년은 눈을 떴다. 한동안 들리지 않았던 구슬픈 비명소리가 소년의 귓가에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한참이 흐르고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들리라는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푸욱 깊은 한숨 소리만 소년의 귀를 때린다.

     “신령님. 부디, 우리 나뭇잎이 시들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많이 달라진 음색이었으나 소년은 알 수 있었다. 이 목소리는 그때 그 밝았던 아이의 것이라고. 앳되었던 음성은 어딜 가고 아이의 음색은 어느새 한껏 힘겨움이 묻어나는 노인의 것이 되었다.

     소년은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멀어져가는 등이 보였다. 눈부신 빛에 다시 눈을 감았으나 소년의 고개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노인의 등은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쪽을 향했다.



     “불의 의지가 깃들기를.”

     요즘 귓가에 자주 들리는 문구였다. 대체 저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게 저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들은 소년 자신에게 큰 간절함을 담고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아닌 이도 있으나, 대부분이 그랬다. 지금 막 온 이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신령님. 동생이 태어났어요. ‘사스케’라고, 제가 이름도 지어줬습니다.”

     라고, 차분한 음색의 아이는 아이 같지 않은 모양새로 소년에게 말하곤 했다. 평소라면 소년이 기억하는 그 옛날처럼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 조용히 떠나갔을 테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아이가 드디어 입을 뗐다.

     “…부디.”

     제 동생을 지켜주십시오. 내뱉지 않은 아이의 음성이, 그 마음이 소년에게 닿았다. 그 음성은, 지금은 늙어버린 아이의 것과 닮아 있었다.

     소년은 거기서 무엇을 느꼈을까. 어쩌면 그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불의 의지’란 저러한 마음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소년은 눈을 떴다. 또 한 번의 비명을 뒤로한 채 이번에 소년은, 걸음을 떼었다.

     사라졌던 악기가 소년의 손에 들린 듯했다. 보이지 않는 악기를 소년이 연주한다. 무척이나 오랜만의 연주였으나 소년은 천천히 그리고 길게 연주했다.

     자신을 등지고 사라진 아이의 비명을 위하여.

     소년의 연주는 소년의 걸음이 익숙한 광장에 다다르고서야 끊어졌다. 어느새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년은 다시 눈을 감았다. 마주친 아이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렀다. 소년의 연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 얼마간 잠잠했다. ‘얼마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예전처럼 소란스러워졌지만, 그놈의 ‘불의 의지’ 타령은 여전했다. 하도 많이 듣다보니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다. 소년은 말을 할 수 없기에 뭐라 따질 수도 없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뜬다 해도 자신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자신은 ‘신령’같은 고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말을 할 수 없으니까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소년은 가만히, 다시 잠에 들었다.

     그러한 소년 곁에는 또 새로운 아이가 다가왔다. 아이는 소년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울었다. 구름과도 같던 소년의 잠이 개었다. 소년의 눈은 다시금 뜨였다.

     아이는 거의 매일같이 소년에게 왔고, 그것은 아이가 소년마냥 클 때까지 계속되었다. 소년은 아이가 오면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잠자코 아이의 곁에 있어주었다. 소년은 말을 할 수 없으니까, 당연히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이의 몫이었다.

     “오늘은 이루카 선생님이 일락라면 사주기로 했다니깐! 그러니까 여긴 조금만 있을 거라구!”

     베시시 웃는 아이의 얼굴에 간만에 미소가 번진다. 소년은 제 입꼬리가 올라간 줄도 모르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루카 선생님은 정말 상냥하다니깐. 만약에…….”

     계속해서 쫑알대던 아이의 음성이 멈추었다. 잠시 숨을 들이켜는 듯하던 아이가 다시 말을 잇는다.

     “만약에, 나한테도 엄마가 있었다면, 이루카 선생님처럼 상냥했을지도…….”

     그렇지, 응? 하고 되묻는 아이의 음성이 처음으로 자신감을 잃었다. 소년은 가만히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한참이나 소년을 찾아오지 않고, 그 후에 처음으로 다시 소년을 방문했을 때에 아이가 내뱉은 것은 ‘울음’이었다.

     “사스케, 사스케에…!”

     소년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아이는 엉엉 울었다. 익숙한 이름을 부르짖으며, 한참을 서럽게. 마치 저에게서 ‘사스케’란 아이를 찾았던 또 다른 아이를 대신하여 우는 것처럼. 소년은 문뜩, 이제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다른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마지막에는 모두 슬픈 표정으로 떠나갔던 아이들을 위하여, 소년은 걸음을 떼었다. 손에는 투명한 악기가 들려 있었고 그 걸음은 익숙하게 ‘광장’을 향했다.



     나뭇잎에 비가 내렸다.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던 노래 소리가 어김없이 오늘도 울려퍼진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집 안으로 들어갔고, 문을 걸어잠그고, 닫았던 창문을 열어 노래했다.

     [눈을 감아 보지 마오

     귀를 닫아 듣지 마오

     그대 내게 소중하니

     눈을 감아 보지 마오

     그의 걸음이 사라질 때까지

     그에게 가지 마오


     보지도 마오 듣지도 마오 

     그를 마주하면 단숨에

     신의 품으로 이끌려갈 테요

     오 당신은 눈을 감아

     그를 보지도 듣지도 마오

     다만 그를 놓아 주오

     편히 쉴 수 있도록

     그렇게 고이 놓아 주오


     만일 그와 마주친다면 그때에는

     그 가는 길 고이 보내주오]

     자신들이 잃은 수많은 이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을 보듬어 살피는 어린 신령님을 위하여.

     광장 한복판에 그들의 노래가 퍼졌다. 소년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비가 여전히 거세게 내리고 있었지만, 소년은 노래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대신하여 투명한 악기 줄을 튕겼다.

     소년은 누군가 저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감았다. 소년을 에워싸는 무언가는 소년에게 명확한 ‘적의’를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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