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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건8-2 (윌라드, 드렉슬러)
    사이퍼즈 2014. 8. 31. 23:24

    [사이퍼즈]

     출연 : 윌라드 크루그먼, 샬럿, 다리오 드렉슬러.

     조건 : 요즘 흥한 꽃병 컨셉. 드렉슬러를 마음에 둔 윌라드.

     그리고 그 마음에 반응한 드렉슬러.


     “크루그먼, 너무한 거 아니야? 샬럿이 자네한테…….”

     벌컥 윌라드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이닥쳤던 드렉슬러가 멈칫하고 그 자리에 굳었다. 방 안은 텅 비어있었다. 막 성을 내며 윌라드를 찾아 들어왔던 그는 이내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가 있으리라 예상했던 책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크루그먼, 그는 매번 이 곳을 떠난 적이 없었다. 아니, 아마 그렇지 않을까 드렉슬러는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가 들이닥칠 때마다 윌라드는 항상 이 책상에 앉아서 마치 저가 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덤덤하게 저를 바라보곤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딜 간 거지. 드렉슬러가 떨떠름하게 빈 방안과 책상을 훑으며 쩝 입맛을 다셨다.

     “응?”

     그러다 멈칫한 것은 낯설지 않은 것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드렉슬러의 손이 윌라드의 책상 위로 뻗어졌다. 이건, 종이학? 드렉슬러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샬럿이 들고 있던 것과 상당히 흡사하다. 설마. 드렉슬러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설마 샬럿이 준 걸 태운 게 아니었단 말이야? 문득 그의 눈앞에 새카맣게 타버렸던 그 잿더미가 떠올랐다.

     그럼 그건 뭐야.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파고든 찰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렉슬러가 휙하니 돌아보았다. 윌라드였다. 방을 들어오다 만 자세로 윌라드는 드렉슬러 저를 보고 있었다. 그것도 ‘놀란 표정’으로. 곧 평소처럼 딱딱한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드렉슬러는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조금쯤 친구 비스무리한 그에게 따질 건 따져야했기 때문이다. 물론 친구라 해도 술친구, 뭐 그런 거 비슷한 거라지만.

     “크루그먼. 자네, 이게 뭔가?”

     드렉슬러의 손이 윌라드의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샬럿의 종이학이었다. 일순 무어라 말하려던 윌라드의 입이 그대로 다물렸다. 드렉슬러는 정확한 답을 그에게서 듣고 싶었다. 드렉슬러가 멈추지 않고 윌라드를 추궁했다.

     “아까 태웠던 그건, 그 꼬맹이의…!”

     선물이 아니었냐고 그저 따져 묻기만 할 참이었는데. 흡하고 드렉슬러의 입이 틀어막힌다. 말을 잇던 그가 잠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멍을 때렸다. 입. 잠깐. 지금, 크루그먼이, 나한테 입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퍼뜩 정신이 든다. 때마침 윌라드가 그를 밀치다시피 해서 그에게서 떨어져 나간 참이었다. 얼이 빠진 드렉슬러가 윌라드를 보자 윌라드는 신경질적으로 그를 밀치며 그 손에 들린 종이학을 낚아챘다.

     “그만 나가주십시오.”

     “아… 어, 응. 그래.”

     날카로운 윌라드의 음성에, 자신이 무얼 하려 했는지도 까먹고서 드렉슬러가 떠듬떠듬 뒷걸음질 쳤다. 문을 닫고 나가는 드렉슬러를 외면한 채 있던 윌라드는 방문이 굳게 닫힌 것을 확인하곤 곧 입을 가렸다. 또다시 거슬리는 무언가가 목 언저리를 틀어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드렉슬러가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잠을 자면 괜찮겠거니 해서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기분만은 싱숭생숭하다. 한참을 고민하고 앉아있던 그는 이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왜 그랬는지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고개를 끄덕이고서 드렉슬러는 당장에 윌라드를 찾아 나섰다. 웬일인지 찾으려니 평소 저가 가기만 하면 그가 있던 곳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수소문해서 그가 있다 한 곳엔 모조리 뒤져보았으나 그 구두코 하나 보이질 않는다. 드렉슬러가 벅벅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하루가 지나다 못해 이제 이틀째도 지나게 생겼는데, 아직도 그때가 문뜩 생각나고 그가 생각난다. 크루그먼. 그때 그가 지었던 표정하며, 어떻게 숨을 내쉬었고, 어떻게 내게……. 콜록 돌연 드렉슬러의 입에서 옅은 기침이 흘렀다. 드렉슬러는 칼칼해진 목을 손가락으로 마사지했다. 폭 그의 입가에서 한숨이 빠져나온다.

     이 녀석은 대체 어딜 간 거야.

     짜증섞인 드렉슬러의 음성이 소리 없이 흩어졌다. 그가 고의적으로 저를 피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드렉슬러는 짐작했다.


     “역시 피하고 있잖아, 자네!”

     까득 이를 가는 소리가 윌라드의 귓가까지 닿았다. 제 어깨를 잡고 잔뜩 성이 난 듯이 저를 몰아치는 드렉슬러의 모습에 윌라드가 그대로 멈추었다. 멈추었다는 것은, 행동뿐만 아니라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행위까지 일순 관두었다는 말이 된다. 설마, 자신의 방에 아예 숨어서 기다리기까지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모른 채 드렉슬러는 연신 빽하니 소리쳤다.

     “대체 뭐야! 벌써 며칠 째 나만 보면 피하고, 말도 안 붙이고! 아, 그래! 생각해보니까 전에 샬럿이랑 같이 봤을 때도 난 개무시하고 샬럿한테만 얘기했지!”

     씩씩 그의 머리맡에서 김이 나올 것만 같다. 시뻘게진 두눈으로 따져대는 드렉슬러를 윌라드는 차분하게 지켜만 보았다.

     “대체, 왜 그러는 건데!”

     한참을 성을 내던 드렉슬러의 입이 그제야 멈추었다. 씩씩대는 그의 숨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아무리 기다려도 윌라드의 입에선 답이 떨어지지 않았다. 드렉슬러는 답답해서 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 짜증스럽게 머리를 헤집었다. 그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윌라드는 여전히 답이 없었고, 드렉슬러 또한 천천히 이성을 되찾았다. 그러자 스치는 생각이 그대로 드렉슬러의 입밖을 새어나왔다.

     “뭐야. 이제… 나랑 얘기하는 것도 ‘시시해졌다’ 그건가.”

     시시해… 뭐? 가라앉은 드렉슬러의 음성에 윌라드가 두 눈을 치켜떴다. 가만히 있던 드렉슬러의 고개가 천천히 윌라드를 향했다. 드물게 크게 뜨인 그 두 눈이 드렉슬러의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드렉슬러는, 윌라드가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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